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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섭의 통계로 본 교육] “명문중 가야 명문대 진학” 기대… 학벌사회 우울한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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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8 19:00:00 수정 : 2017-11-18 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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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 중학교 배정 우선권 요구 / 학생 많은데 인근 학교 1곳뿐인 지역 / 자녀 더 나은 곳 입학 위해 갈등 심화 / 상위권 대학교 졸업장 목표 열 올려 / 2017년 서울 일반고, 서울대 입학생 586명 / ‘교육특구’서만 60% 배출… 현실 방증
“오랜 거주자를 우선 배정해 주세요.”

최근 아내로부터 도로 건너편 A아파트단지 주민들이 교육지원청에 중학교 배정 방법을 바꿔 달라고 민원을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행 무작위 추첨 대신 통학거리와 전입연도 등을 감안해 달라는 요구였다.

처음에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생각했다. 서울 지역 중학교 배정 원칙은 대체로 ‘거주지 학교군 내 소재 학교 가운데 추첨으로 배정하되 교통편을 참작한다’이다. 또 다른 중학교까지 통학거리는 걸어서 15분 남짓밖에 안 된다. 같은 단지 주민인데 거주기간에 따라 자녀 진학 학교가 달라진다는 것도 부당하다 싶었다.

‘극성스럽다’는 단어도 떠올랐다. 이른바 ‘학군’이 좋지 않은 자치구에 살면서 ‘어느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가 더 좋네’ 따진다는 게 씁쓸했다. 대학 입시를 목전에 둔 고교야 그렇다 치더라도 중학교 단계에서부터 서열화하는 건 지나치다 싶었다. 얼마 뒤 이런 짐작이 진실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우선 이 학교군 주민들은 선호하는 중학교를 고를 기회조차 없다. 뉴타운 조성으로 모두 5개 아파트 단지, 총 8447가구가 들어서 있는데, 인근 중학교는 이곳뿐이다.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신청자를 다 받으려 하다 보니 ‘콩나물 교실’이 됐다. 이 중학교 학급당 학생수는 32.3명으로 전국 평균(26.4명)을 크게 웃돈다. 학생이 1131명으로 많아 급식 2부제를 시행할 정도다. 그래도 신청자의 약 40%는 교통편으로 통학해야 하는 다른 중학교에 배정된다고 한다.

건너편 아파트 단지 학부모들이 자녀가 이 학교에 들어가길 바라는 이유가 집 근처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S중은 인근에서 명문으로 소문난 학교다. 학생들의 국어·수학·영어 성취도 평균이나 A등급 비율, 특수목적고(과학고·외국어고·국제고), 자율형사립고 진학률은 인근 중학교들을 압도한다. 그렇다고 이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학벌이다. 상위권 대학 졸업장은 어느 정도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장한다. 더 나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특목고·자사고 또는 그나마 괜찮은 일반고에, 좋은 중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괜찮은 중·고교는 서울의 경우 죄다 ‘교육특구’에 몰려 있다. 올해 서울 일반고 출신 서울대 신입생을 살펴보면 강남구, 서초구, 노원구, 송파구, 양천구 순으로 많았다. 강남구는 서울 일반고 출신 서울대 합격생(586명)의 24.1%인 141명을 배출했다. 서초·노원·송파·양천까지 합치면 359명으로 61.3%를 차지한다.

성적 대신 다른 역량을 주로 보겠다는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하면서 이런 ‘강남·북’ 교육격차는 더 벌어졌다. 10년 전인 2008학년도 이들 5개구 출신 서울대 합격자는 380명으로 전체(700명)의 54.3%였다. 교육특구는 대개 집값이 비싸다. 아파트 전셋값마저 10억원을 호가한다.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어도 이곳에 이사할 돈이 없으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강남북은 면학 분위기에서도 차이가 난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주요(국·수·영) 영역 평균이 2등급 이내인 강남구 일반고 학생은 17.0%였다. 반면 최하위인 금천구는 1.1%다. 이는 강남구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1개 영역 평균이 2등급 이내)은 10명 중 4명이고, 금천구에선 1명뿐이라는 얘기라고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설명했다.

문득 한국의 모든 학부모는 실패한 교육정책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지역별 서열화는 여전하고, 집값과 사교육비는 갈수록 치솟는다. 자녀가 좀더 잘 되길 바라는 ‘비교육특구’ 부모의 몸부림은 경제적 형편과 제도적 한계 때문에 왜곡되고, 좌절된다. 정부가 말만 번지르르한 공약 대신 이러한 입시지옥 피해자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비판하는 요즘 세태만이라도 개선하길 바란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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