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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사라진 연애편지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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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1-17 21:07:52 수정 : 2017-11-17 21: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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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애편지 쓰는 재미에 푹 빠졌지 뭐야.”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 A가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드디어 연애를 시작했다는 좋은 소식을 알렸다. 그는 한껏 들뜬 채 새로운 연인과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그렇게 즐겁다며 재잘거렸다. 당시 남자친구와 소원해진 관계로 고민하는 내게 A는 ‘한 수 가르쳐주겠다’며 선심 쓰듯 그 편지들을 넘겨 보였다.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생색과 함께.

정지혜 산업부 기자
사실 그다지 엿보고 싶지도 않았던 남의 연애사보다 더 놀라운 것은 편지 형태였다. A가 보여준 것은 편지지 더미가 아닌 한 커플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내의 멀티미디어 메시지함이었던 것. 여느 문구점에서 볼 수 있는 편지지가 스마트폰 화면에 옮겨진 채 애정어린 문장들과 함께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신기해하는 나를 보며 그는 “요즘 누가 종이에 편지를 쓰냐”며 오히려 더 놀라워했다.

그러고 보니 실은 나 자신도 종이에 쓴 편지를 주고받아 본 일이 까마득하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이메일로 대체됐던 일반적인 편지들은 실물로 보이지 않는 실체만큼 관계성과 힘을 잃어갔다. 낭만의 끝판왕이라 부를 만한 연애편지 역시 수기로 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되짚어보니 꽤나 오래 전 일이 된 첫 연애를 제외하고는 종이에 꾹꾹 눌러 연애편지를 쓴 기억도, 주변에서 이를 쓴다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심지어는 위의 친구처럼 스마트폰 편지함을 갖는 일조차 수고롭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시시각각 문자를 보내고 소통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데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장문의 편지를 써낼 이유가 무엇이냐는 얘기다.

비단 편지만의 운명은 아닌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티켓북 속에는 극장마다 개성 있던 영화표가 사라지고 동일한 기계식 영수증만 모이기 시작했다. 기차나 버스표도 실물 형태의 표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고속버스의 경우 모바일 화면의 바코드만 삑 하고 찍으면 순식간에 탑승 처리된다. 언제나 예외 없이 바쁜 우리는 표를 바꾸러 갈 번거로움이 없으니 편리하고, 자원 절약에도 기여한다니 일석이조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실물 편지와 각종 표들이 사라지는 현실은 ‘시대적 흐름’으로 치부하기엔 다소 씁쓸하다. 아무래도 해당 경험의 밀도를 낮추고 인스턴트식 관계를 양산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다. 전산기록에 남아있고 서버나 웹하드에서 언제든 불러올 수 있지만 ‘언제나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기억하려는 수고와 노력의 소중함도 경시된다. 이런 환경에선 진심을 전하는 일이 혹 부담이 될까 염려되기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인터넷 연결 없이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종이 한장 한장에 저장될 추억거리는 사장되어 간다.

최근 손글씨를 예술화한 캘리그래피 열풍이 번진 것은 일각의 이런 아쉬움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모르긴 해도 다음 차례는 진짜 종이에 쓰는 연애편지 열풍이었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글씨체, 편지지에 전해지는 악력과 습관적인 문체, 행간에서 느껴지는 고민과 노력의 흔적, 편지 한 통마다 녹아들 특별한 감성 모두를 좀 더 멋지게 ‘마음속에 저장’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정지혜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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