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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늦어진 연탄쿠폰… '에너지 빈곤층' 마음까지 '덜덜'

입력 : 2017-11-17 19:50:59 수정 : 2017-11-17 19: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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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눈치보다 연탄값 고시 주저 / 쿠폰 1장당 지원 금액 결정 못해 / 예년비해 배부 보름 넘게 늦어져 / 빨리 찾아온 추위에 시름만 깊어
“이분들(자원봉사자)이 준 연탄 없으면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정말 다 얼어죽어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13.2㎡(약 4평) 남짓한 작은 집에 홀로 생활하는 신순분(76)할머니. 그는 지난 15일 자원봉사자와 함께 찾은 기자에게 이같이 겨울나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가 한 달에 쥐는 돈은 40만원 안팎. 약값 20만∼25만원과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면 겨울 추위를 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자원봉사자들이 전날 연탄 100장을 넣어줘 한시름 덜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매년 받던 ‘연탄쿠폰’마저 올해는 깜깜 무소식이어서 시름이 더욱 깊다.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다가온 가운데 정부의 ‘눈치 행정’에 연탄을 쓰고 있는 ‘에너지 빈곤층’(소득의 10분의1 이상을 광열비에 쓰는 가구)이 애꿎게 유탄을 맞고 있다. 관계 당국이 여론만 살피면서 연탄값 고시를 주저한 탓에 기초생활수급자 등에게 주는 연탄쿠폰 배부가 예년에 비해 보름 이상 늦어졌기 때문이다.

17일 세계일보 취재결과 한국광해관리공단은 한국조폐공사와 함께 지난 8일 연탄쿠폰 제작에 착수, 오는 29일에야 검수 및 배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연탄쿠폰은 배달 문제 등을 고려해 추위가 오기 전 나눠주는 게 보통인데 2014년, 2015년엔 각각 11월4일, 10월23일 배부됐다. 7년 만의 연탄값 인상으로 쿠폰 제작이 늦어진 지난해에도 11월10일에는 배부가 시작됐다.


예년에 비해 길게는 한 달 이상 배부가 늦어진 셈이다. 올해 이처럼 배부가 늦어진 건 정부가 연탄값 인상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연탄쿠폰 1장당 지원금액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연탄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지난 6월부터 연탄쿠폰 지원 대상자를 접수받는 등 일찌감치 쿠폰배부 작업을 시작했다”면서도 “연탄값 고시 계획이 꼬이면서 쿠폰 발부도 덩달아 차질을 빚는 상황으로 안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가 연탄값 결정에 고민을 거듭하는 사정도 있다.

올해 연탄 한 장의 공장도 가격(446.75원)은 원가의 64%에 불과하고, 그 나머지는 정부가 보조하고 있다. 더구나 앞서 정부는 2010년 서울 G20(주요20개국)정상회의에서 “2020년까지 국내 업체에 제공하는 석탄 보조금을 없애겠다”고 약속해 둔 상태이다. 대한석탄공사가 2000년대 들어 자본잠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등 적자가 심각한 점 등 연탄값 인상 요인이 많다.

하지만 거센 반대 여론에 밀려 연탄값 고시가 계속해 미뤄졌고 공단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함에 따라 일단 지난해 지원금액(23만5000원)으로 쿠폰 제작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배부 시점만 늦어진 꼴인 데다 쿠폰 제작 차질이 사전에 충분히 예상된 만큼 ‘탁상행정’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올해는 이달 9일 첫 한파주의보가 내려지는 등 예년에 비해 추위가 일찍 찾아온 터라 문제가 더 크단 지적이다.

연탄을 쓰는 에너지 빈곤층은 영문도 모른 채 주위의 도움만 기다리는 실정이다. 노원구에 사는 김창혁(78)할아버지는 “연탄쿠폰을 왜 안 주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관계자는 “연탄을 아직까지 쓰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생존 연료”라며 “정부는 연탄 가격 인상 이전에 공청회를 열고 관련 대책을 꼼꼼히 마련해야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서울연탄은행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연탄사용 가구는 서울 2808가구를 포함해 전국에 13만464가구에 이른다. 이중 4만8052가구가 기초생활수급자였고, 차상위계층이 1만5526가구였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급은 아니지만 부양의무 기피로 인한 독거노인이나 장애가정 등 ‘소외가구’는 5만5621가구에 달한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연탄값 인상 여부는 아직 내부검토 중”이라며 “쿠폰이 최대한 빠르게 배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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