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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칼럼] 한·미 FTA 재협상 비준에 반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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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07 22:41:24 수정 : 2018-10-07 22: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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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트럭에 관세 철폐시기 연장 / 철강 관세면제로 수출쿼터 수용 / 남·북·미 정상회담 정국 유지 위해 / 서민에 타격 민생부문 양보 안 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결과가 국회 비준 동의를 앞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실망스러운 부분은 추가적 양보가 상호 교역의 확대균형을 이룬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양산업의 지나친 보호에 앞장선 합의라는 점이다. 미국의 트럭제조업은 25%나 되는 관세폭탄으로 버티며 소비자의 다양한 잠재수요를 겨우 6개의 국내 브랜드로 충족시켜온 대표 사양 산업이다. 2021년이면 철폐될 관세를 이번에 추가로 20년간 연장하는 데 합의해줬으니 우리 픽업트럭의 대미 진출은 물 건너간 셈이다. 우리의 자동차 안전기준과 환경기준 적용에 있어 미국산 수입 자동차가 누리는 면제 혜택을 배로 늘려주거나, 미국 기준을 사실상 수용하기로 한 것도 안전과 환경이라는 문제를 대폭 양보해버렸다는 점에서 비난받을 만하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통상법

그 대가로 정부는 농산물 시장을 방어했고, 철강에 대한 트럼프 보복관세로부터 면제 혜택을 받았음을 내세우고 있다. 농산물 추가개방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유권자의 표심을 잡으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사항도 아니어서 미국 측 스스로 철회한 이슈다. 철강 관세 면제의 대가로 예년 수출물량 70% 수준의 쿼터를 설정받는 데 동의해 버린 것이 협상 성과로 포장되는 데에도 반대한다. 최근 일본은 25%의 추가관세를 지불하고서 오히려 철강제품의 대미 수출액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공산품의 수출쿼터를 설정하는 데 합의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이 금지하고 있다. 제3국이 언제라도 WTO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세계 최초로 불법적 철강쿼터를 수용해버린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는 재협상을 통해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의 남발 가능성을 줄인 게 성과라는 입장이다. 최근 론스타 ISD 판결을 앞두고 있고, 엘리엇의 ISD 제소도 이뤄진 바가 있다. 많게는 수조원대의 배상금을 한꺼번에 세금으로 외국 기업에 지불해야 하는 사태가 예상된다. 정부가 취하고 있는 최저임금제, 근로시간 단축, 부동산 정책, 그리고 앞으로도 취할 각종 반기업적 조치가 한·미 FTA ISD 제소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이유는 ‘투자’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와 ‘간접수용’ 조항 때문이다. 해외투자기업의 보호에 주안점을 둔 미국 정부의 모델 투자협정 문안을 거의 복사해 한·미 FTA에 도입한 데 기인한다. 그런데도 이번 재협상에서 핵심조항에 손도 못 대고 ‘최소기준 대우’ ‘비차별대우’ ‘입증책임’과 같은 주변적 조항에 있어, 그동안 발전한 판례의 경향을 반영해 넣거나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ISD 제소 남발을 방지했다는 부분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투자협정에 따른 ISD 제기와 동시에 한·미 FTA의 그것을 발동할 수 없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지 투자자가 순차적으로 협정을 갈아타며 제소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원산지 검증과 통관에 있어 신속처리, 투명성 및 제도적 조화의 원칙을 인정하는 데 합의한 점도 미국산 농산물 수입제도에 있어 그동안 우리 측이 암암리에 유지하고 있었던 비관세 장벽을 더 이상 활용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국내 혁신 신약에 대한 약가우대정책을 중지해야 하는 약속을 한 것과 외환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 현황을 보고하기로 별도 합의해준 점도 미국 측에 큰 선물을 안긴 셈이다.

이러한 무수한 실리와 주권적 사항의 양보에도 미국이 철강 관세에 이어 새롭게 빼어든 자동차 추가 관세 카드로부터 우리가 면제 혜택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설령 면제받을지라도 철강쿼터 선례에 맞춰 자동차 수출 쿼터를 설정받을 게 뻔하다. 자동차 다음에는 선박, 전자제품, 반도체 관세, 쿼터 카드가 기다리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이 ‘역사적인 협상’이라는 자화자찬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것만 보더라도 협상 결과가 얼마나 미국 측의 일방적인 승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변화무쌍한 통상보복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닌 결과라면 동정심이라도 얻을 수 있다. 북한 핵 문제를 놓고 어찌 굴러갈지도 모르는 남·북·미 정상회담 정국을 유지시키느라 통상이라는 서민이 직접 타격을 보는 민생 부문을 종속변수로 간주해 양보해버린 결과다. 이것이 필자가 한·미 FTA 재협상 결과의 비준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통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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