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국민연금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찬반 논란에도 결국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상반기 주주총회 시즌에는 총 2561개 안건 중 524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의결권 비율이 20.5%다. 매년 10% 안팎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해 크게 높아진 수치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첫 타깃을 대한항공과 한진칼로 정한 것도 이 같은 행보와 무관치 않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은 지난해 검찰 수사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기업이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과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력 영상’이 드러났고, 검찰은 조양호 회장에 대해선 배임·사기·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오너일가의 불미스러운 일로 대한항공 주가는 지난해 초 최고 3만9000원에서 10월 2만5050원까지 추락했다. 대한항공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도 손실이 불가피했다.
그렇다고 당장 국민연금이 3월 대한항공과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임원 선임·해임 또는 직무정지, 정관 변경 등 실질적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에 나서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하려면 지분이 1%포인트 이상 변동될 경우 5일 이내 신고해야 하고, 지분이 10%가 넘으면 6개월 내 발생한 수익을 반환해야 하는 규정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방안으로 기존 이사진 연임 반대나 사외이사 선임 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조 회장 일가가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이사로서 역할을 상실한 상황에서 조 회장의 임기가 3월 끝이 난다”며 “스튜어드십코드가 도입된 만큼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연임 반대의결권 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당장 시장과 경영계는 국민연금이 대기업에 대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선 것에 따른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한항공·한진칼을 넘어서 더 많은 기업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막대한 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을 활용해 합법적으로 기업 경영에 간섭할 경우 자칫 ‘연금사회주의’라는 논란까지 불러올 수 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