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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아입구' 외치면서… 유럽 진면목엔 눈감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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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03 14:00:00 수정 : 2019-08-02 21: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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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벗어나 유럽 일원이 되고자 했던 日 / 1차 대전 승전 이어 국제연맹 상임이사 돼 / '피스메이커' 하랬더니 되레 침략자로 돌변 / "유럽 본받겠다"며 獨 과거사 반성은 외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19세기 메이지 유신 이후 오랫동안 일본의 국가적 목표는 ‘탈아입구(脫亞入歐)’였다. 아시아를 벗어나 ‘구주’, 곧 유럽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한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 달리 일본만은 신속히 근대화를 이뤄 유럽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아시아 벗어나 유럽 일원이 되고자 했던 日

 

최근까지 주(駐)부산 일본 총영사를 지낸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尚史)는 한국에 오래 근무해 일본 외무성의 대표적인 ‘지한파’ 외교관으로 통한다. 미차가미 전 총영사는 지난 2016년 펴낸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 외교관인 미치가미 히사시 전 부산 총영사가 쓴 책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 표지.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인들은 툭하면 ‘같은 아시아인끼리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는데 솔직히 일본인은 ‘한국과 일본이 같은 아시아 국가’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일본은 오래 전에 ‘탈아’, 즉 아시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일본 하면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만 떠올리지만 일본은 1차 대전(1914∼1918)에도 참전했다. 유럽에서 영국·프랑스·러시아 연합군과 독일·오스트리아 동맹국 간에 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영·일동맹으로 영국과 엮여 있던 일본은 발빠르게 독일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다.

 

영·프 연합군은 일본군이 직접 유럽으로 와서 독일군과 싸워주길 바랬다. 하지만 일본은 정작 유럽엔 별 관심이 없었다. 대신 중국 등 아시아에 있던 독일군 기지를 공격해 점령했다. 역사학자들은 “애초 일본의 목표는 독일을 치는 게 아니라 중국에 있는 독일 이권을 빼앗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1차 대전 승전 후 국제연맹 상임이사국 돼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1918년 프랑스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리자 일본도 승전국의 일원으로 회의에 참여한다. 아직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던 시절 일본이 그야말로 세계 외교 무대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외교관과 국제법학자 등 무려 60여명의 대표단을 파리에 보냈으나 회의 내내 일본의 존재감은 보잘 것 없었다. 유럽 전쟁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른 영국·프랑스·미국에 비해 일본의 기여도가 턱없이 낮았던 탓이다.

 

처음에는 영국·프랑스·미국·이탈리아·일본 5대 전승국이 회의를 주도하는 듯했지만 가장 먼저 일본이 배제됐고 곧바로 이탈리아도 탈락하면서 3대 전승국에 의해 사실상 모든 전후처리가 이뤄진다. 그래도 전쟁의 결과물로 탄생한 국제연맹(유엔의 전신)에서 일본은 영국·프랑스·이탈리아와 나란히 상임이사국에 오르는 ‘영예’를 누린다. 오늘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떠올리면 된다.

 

위에 소개한 미치가미 전 총영사도 일본인으로서 이 대목이 무척 자랑스러웠던 모양이다. 저서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에서 그는 “일본은 1920년대에 세계에 단 4개뿐인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었다”며 “한국인들은 이 점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적었다. 그냥 ‘한국과 일본은 원래부터 급이 다른 나라’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유럽 본받겠다"며 獨 과거사 반성은 외면

 

그럼 일본은 ‘피스메이커’로서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나. ‘전혀 아니다’가 답이다. 일본은 1931년 이른바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북부를 점령한 뒤 만주국이란 괴뢰국을 세운다. 이에 국제연맹이 일본을 성토하자 일본은 1933년 스스로 연맹에서 탈퇴한다. 이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을 잇달아 일으키며 주변국들을 괴롭히다가 미국에 패배해 1945년 8월15일 ‘무조건 항복’의 굴욕을 겪는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의 대표가 미 해군 함정 위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 마이크 앞에 서 있는 장군이 미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 세계일보 자료사진

 

일본이 진정한 ‘탈아입구’를 이루려면 2차 대전 때 동맹국이었던 독일이 전후 어떻게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2일 외신에 따르면 독일은 폴란드 바르샤바 봉기 45주년을 맞아 외무장관이 폴란드를 방문, “독일인과 독일의 이름으로 부끄럽다. 폴란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바르샤바 봉기란 2차 대전 도중인 1944년 8월 독일군 점령 하의 바르샤바 시민들이 독일군에 맞서 봉기했다가 20만명 가까이 사망한 슬픈 과거사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이 자행된 독일 남부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침 오는 9월1일은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대전이 일어난지 꼭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또 폴란드로 직접 가서 진솔한 사과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과거에 대해 눈 감는 사람은 현재도 볼 수 없다.”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이 1985년 2차 대전 종전 40주년 기념사에서 한 말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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