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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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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13 23:13:45 수정 : 2019-12-13 23: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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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서 차용은 자신의 작품 창작을 위해 다른 곳에서 사용한 이미지나 내용을 빌려오는 방법이다. 그 이미지가 갖고 있는 본래의 의미와 그것을 빌린 작가가 덧붙인 새로운 의미가 서로 부딪치게 되고, 결국 작가가 새롭게 부여한 의미가 본래의 의미를 대신하게 하는 방법이다.

산디 셔먼의 '무제(메릴린)'

신디 셔먼은 영화 속에 등장한 여성의 이미지를 차용해 때로는 흑백으로 때로는 컬러로 된 사진 작품을 만들어 자신의 모습처럼 제시했다. 이 작품에서는 1960년대 여배우의 우상처럼 여겨진 메릴린 먼로의 유혹적인 모습을 흉내 내고, 마치 자신의 자화상처럼 제시했다. 차용해온 영화 속에서 연출된 여성의 역할과 분위기라는 의미를 나타냈고, 그의 자화상이라는 성격도 갖게 해서 두 가지의 충돌을 통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 했다.

어떤 뜻이 있을까. 그는 다른 곳에서 사용된 이미지를 빌려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미술에 끊임없이 요구돼 온 독창성을 부정한다는 의도를 나타냈다. 미술에서 더 이상의 새로운 창조는 없으며, 지금까지 등장한 것을 가져다 변형시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셔먼은 자화상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아 정체성에 관한 사회적 의미도 나타내려 했다.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여성 이미지가 여성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대중 매체가 만들고 강요하는 여성의 이미지라는 생각을 표현했고, 만들고 꾸며진 이미지에 영향 받으면서 여성의 정체성 자체가 지워지고 있다는 비판적 관점도 담았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는 이야기나 이미지, 인생관이나 세계관 등에 의해서 우리의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기도 한다는 관점도 같이 제시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금 우리는 꾸며진 현실과 이미지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 그것들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올 한 해 꾸며진 모습의 사람을 보면서 많은 실망을 했다. 반면교사 삼아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나는 어디까지 왔고 어디쯤에 있는지도 생각해 보게 하는 연말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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