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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헌 바꾸고 가덕도 신공항 되살려
제왕적 지방권력 공론화 기회 날려

많은 판돈이 걸렸다. 오늘 서울·부산시장 보선 결과에 따라 문재인정부 운명과 내년 대통령 선거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지는 쪽은 치명상을 입는다. 어느 쪽이든 실패의 책임과 수습의 방향을 놓고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상처의 정도는 여당이 깊을 수밖에 없다. 자당 소속 단체장 잘못으로 치러진 보선에서 천문학적 물량을 쏟아붓고도 진다면 ‘원칙 없는 패배’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최악의 시나리오인 원칙 없는 패배를 피할 기회는 있었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당헌 96조2항)는 규정을 지켰다면 말이다. 선거는 포기하더라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원칙은 살릴 수 있었다. 박원순, 오거돈 성비위 사건에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도 그것으로 상당부분 갈음됐을 터다.

황정미 편집인

전 당원 투표를 동원해 당헌을 바꾼 대가는 선거의 승패에 그치지 않는다. 선거에서 이긴다 해도 무원칙·무책임의 전례는 두고두고 남는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가장 크게 무너진 원칙은 가덕도 신공항 살리기다. 정치바람을 타지 않았다면 전문가 평가에서 적합도 꼴찌였던 가덕도가 살아나진 못했을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을 비롯한 당·정·청 지도부가 총출동한 가덕도 방문 사진이 모든 걸 보여준다. 대통령은 “가슴이 뛴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국무회의는 가덕도 신공항법 후속조치 계획을 추인해 대못을 박았다. 40억원 이상 투입된 김해신공항 사업은 폐기됐고, 수십조원을 밀어넣어야 할 가덕도 사전타당성 연구 검토 용역이 발주됐다. 국토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항공기 안전성과 환경, 시공·운영·경제성 등 7가지 요소 모두 심각한 문제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래서 사전타당성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공항 건설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가덕도신공항 터의 43%는 바다를 메워 조성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산림 훼손, 해양생태계 파괴는 말할 것도 없고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요인은 또 어쩔 것인가. 환경보호를 위한 ‘그린 뉴딜’을 외치는 정부가 환경파괴적 건설 사업을 추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선거가 원칙을 앞선 탓이다.

중앙선관위는 “보궐선거는 왜 하죠”라는 시민단체의 현수막을 불허했다. 유권자들이 이미 알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맞다. 하지만 선거 와중에 실종됐다. 의도적으로 묻히고 덮였다. 박원순 사건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른 3인방이 민주당 선대위 요직을 차지해 논란을 빚었고 “박원순은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라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 글이 회자됐다. 여성 후보를 내놓고도 성 비위 사건에 대한 대책을 쟁점화하거나 피해자에 진정한 사과를 하는 데 인색했다. 광역단체장 가운데 여성은 이제껏 없었다. 첫 여성 광역단체장에 도전하는 후보가 ‘제왕적 권력’의 문제를 공론화할 기회를 그렇게 날렸다.

대신 선거는 네거티브 난타전으로 흘렀다. 부동산 정책의 위선에 민심이 들끓자 “국민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여당 지도부의 읍소 행렬이 이어졌다. 마지막까지 선거 판을 흔들 요량인지 정권 핵심인사들은 돌아가며 ‘중대결심’을 운운한다. 어떻게든 선거를 이기겠다는 집요함이 무서울 정도다. 여권 일각에서 “원칙 있는 패배가 원칙 없는 승리보다 낫다”는 ‘노무현 정신’을 소환했지만 반응은 냉소적이다. 사실 원칙 없는 패배를 최악이라고 한 노무현도 원칙 없는 승리라도 백배 낫다고 여긴 이해찬을 이기지 못했다. 권력욕이 원칙을 압도한 탓이다.

이번 보선이 여당에 원칙 없는 승리가 될지, 원칙 없는 패배가 될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선거에서 이기긴 어렵다. 분노하는 지지자들은 그 힘으로 투표장을 찾는다. 응징의 대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당이 네거티브전에 매달리는 것도 상대당, 후보에 대한 분노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왜 부끄러움이 우리 몫이냐”를 따지는 지지자를 움직이게 하긴 힘들다. 보수 야당이 박근혜정권 탄핵 이후 모든 선거에서 줄줄이 패배한 이유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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