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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칼럼]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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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1 23:06:09 수정 : 2021-04-11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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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해방 외치던 박노해 부부
세계평화 운동하며 ‘조용한 삶’
與, 민주 유공 셀프 특혜 추진
정권의 추악함에 민심은 분노

1984년, 갓 복학한 스물 몇 살의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책은 그해 나온 시집 ‘노동의 새벽’이었다. 그날 밤 나는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라고 하기엔 너무 끔찍하고 적나라한 노동자의 고통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핏발선 시를 발표한 투사는 도대체 누구일까. 박노해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물론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살벌한 시어를 보고 시로 위장한 혁명의 노래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당시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195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랐다. 어린 나이 상경해 낮에는 노동자로, 밤에는 선린상고 야간을 다녔다.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군사독재 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부 팔렸다. 시집은 당시 잊힌 계급이던 천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다. 시집은 또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면서 한국 사회를 충격으로 흔들었다.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 1989년 분단 이후 공산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7년여의 수배생활 끝에 91년 체포돼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1998년 7년 6개월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 사회주의 종주국이던 소련 붕괴 이후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현재 아프리카, 중남미 등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하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매체경영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김진주다. 1955년 부산 출생,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했다. 유복한 집에서 ‘진주처럼’ 곱게 자라 대학병원 약사로 일하던 그녀가 찾아간 곳은 공장이었다. 거기서 박노해를 만나 결혼했다. 같이 사노맹으로 활동하다 91년 구속되어 5년간 감방에서 청춘을 보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기기술자이고 당시 5·16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의 도움으로 최초로 국산라디오 1호(금성 A-501)를 개발했다. 투병 중이던 아버지의 구술을 바탕으로 연전에 ‘아버지 라듸오’라는 책을 펴냈다.

몹시 듣기 불편한 말이 있다. “위에는 맑아지기 시작했는데 바닥에 가면 잘못된 관행이 많이 남아 있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말이다. 나는 그의 말에 심한 구토감을 느낀다. 자신을 포함한 지금의 집권세력은 깨끗한데, 바닥의 민초들은 혼탁하다고 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그런 것까지 고치려면 재집권해야 한다”고. 이 얼마나 역겨운 말인가. 이해찬은 세종시에서 농지 일부를 대지로 바꿔 땅값이 4배 올랐다. 이 땅 근처에 고속도로 나들목이 ‘우연히’ 생긴다고 한다. 대통령은 경남 양산에 영농경력 ‘11년’을 적고 형질을 대지로 바꿔 저택을 지었다. 그러면서 농지투기 단속은 엄벌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조국의 자녀는 가짜 인턴증명서와 상장으로 대학 가고 의사가 됐다. 추미애의 아들은 일반병들이 상상할 수 없는 휴가 특혜를 누렸다. 윤미향은 위안부 할머니를 앞세워 자기 배를 불렸지만 금배지를 달았다. 투기로 물러났던 김의겸은 보란 듯이 국회의원으로 영전했다. 이해찬의 말대로 이들은 과연 맑은 윗물인가. 그런 권력 실세들이 민주유공자예우법을 발의했다. 미흡한 예우를 문제 삼아 여당 의원 등 73명이 발의했다가 잠시 후퇴했다. 선거를 의식한 제스처쯤 보인다. 또 들고 나올지 모른다. 운동권들이 자신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 스스로 유공자가 되고, 그 특혜를 자식에게도 대물림하는 형세다. 그러나 이해찬이 언급한 ‘바닥’이 그렇게 바보들은 아니다.

박노해가 말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고.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단칼에 거부한 이유다. 또 있다. 이 땅의 민주화에 생을 송두리째 바친 김진주는 지금은 거제도의 작은 암자에서 적요하게 살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지금 정권의 추악함에 ‘바닥’들은 형언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렇다. 이 나라의 민주화가 집권 운동권의 투쟁 덕에 성취된 것만 아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사라져 간 수많은 ‘바닥’들의 눈물 덕분이다. 정권의 도덕적 상징성은 더 이상 없다. 척결 대상이 된 그들이 아직도 개혁의 주체인 양 착각하고 있다. 위선, 부패, 무능, 내로남불의 상징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명예와 권력을 움켜쥐고 돈까지 갖고 싶었던 집권 운동권 시대는 이제 종말로 치닫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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