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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기 실패 확률 ‘깜깜이’… 5000만원짜리 아이템 2억 들어 [심층기획 - '확률형 아이템' 규제 하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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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2 06:00:00 수정 : 2021-04-12 08: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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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고 사도 종류·성능은 ‘운발’
확률 전면공개 목소리 높아져도
정부, 업계 자율규제 믿고 손놓아

2007년 ‘리니지’ 방어구 ‘티셔츠’ 논란 점화
2011년 규제안 논의 있었지만 유야무야
업계, 자율규제방안 마련 불구 피해 계속
공정위, 2018년 넥슨 등에 9억 넘는 과징금

자율규제 대상 게임의 ‘강령’ 준수율 86%
게임사 공개 확률 사실 여부 조사 힘들어
당국 “자율규제 한계… 법적 규제 필요 상황”
일부 “확률 공개 영업비밀… 게임 발전 저해”

中, 2018년 세계 첫 확률공개 의무화
네덜란드·벨기에는 도박 간주 금지
“모바일게임 ‘리니지2M’ 속 최고 등급의 아이템 ‘신화 무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 획득 제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게임 가이드북에 공개된 방법을 바탕으로 신화 무기 획득 비용을 개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희귀제작레시피 120개’, ‘영웅제작레시피 9개’, ‘전설제작레시피 3개’를 합성해 제작하면 1778만원이 들고, ‘+11 전설 무기’, ‘장인무기강화주문서 10개’를 구매해 제작하면 5472만원 이상이 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가격은 각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뽑기 실패 확률이 제외돼 보통 1억5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를 들여야 신화 무기 1개를 제조할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실, ‘확률형 아이템 확률 조작 의혹 관련 조사 결과’ 자료 요약

 

온라인, 모바일게임 등에서 판매하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구매하지만 아이템 종류나 효과, 성능은 ‘확률’에 따라 결정되는 확률형 아이템을 두고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는 지적을 넘어 ‘1등 없는 로또’라는 지적까지 이어지면서 입법과 제재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상황이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기 의무화 등을 담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 전부 개정안을 지난 2월 상정하고 심사 절차에 들어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실이 요청한 ‘확률형 아이템 확률 조작 의혹’ 조사 요구 건에 대해 검토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대해 정부가 늑장 대처를 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 논란이 이미 십수년 전에 시작됐지만 업계의 자율규제만 믿고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십수년째 계속되는 확률형 아이템 논란

국내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두고 논란이 시작된 것은 2007년 연말 즈음이다. 엔씨소프트가 온라인게임 ‘리니지’에서 게임 속 방어구인 ‘티셔츠’를 개당 2000원씩에 판매했는데, 이 아이템을 구매하면 무조건 능력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확률을 통해 능력치가 올라가도록 했다. 1인당 최대 15만원까지 티셔츠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데 최악의 경우 15만원을 써도 능력치를 올릴 수 없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아이템이 논란이 되면서 리니지는 게임 화면에 ‘사행성’ 표시를 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는 게임의 게임머니와 아이템을 사고팔지 못하게 하는 게임진흥법 개정안 등이 논의되면서 확률형 아이템 규제도 함께 도마에 올랐지만 유야무야됐다.

2015년에는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이 게임머니 등 유·무형 결과물의 종류·구성비율 및 획득 확률 등에 관한 정보가 게임물 내용 정보에 포함되도록 하는 게임산업법을 발의했고, 이후 다른 의원들의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정 의원의 법안 발의 등을 계기로 업계가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했지만 게이머들의 피해호소는 꾸준히 이어지는 상황이다.

 

2018년 공정위가 ㈜넥슨코리아 등에 대해 9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대표적이다. 넥슨코리아는 2016년 1인칭 슈팅게임 ‘서든어택’에서 900원짜리 아이템을 구매해 총 16개의 각기 다른 조각을 모두 모아 퍼즐을 완성하면 혜택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일부 조각의 획득 확률이 0.5∼1.5% 수준으로 설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게이머 1명이 46만원을 들여 아이템 사들여도 퍼즐을 완성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공정위는 넥슨코리아에 대해 거짓·과장 및 기만적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인한 행위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억3900만원을 부과했다.

게임업계의 자율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자율규제 준수율 86%?…문체부 “자율규제로는 도저히 안 된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는 지난달 발표한 ‘2020년 2월 자율규제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에서 자율규제 적용 대상 게임물 161개 중 139개가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을 준수해 준수율이 86.3% 기록했다고 밝혔다.

다만 제대로 규제가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가 이어진다.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게임사가 공개한 확률과 실제 게임에서 적용된 확률을 비교했을 때 게이머들에게 불리하게 조작됐던 사례와 강력하게 의심되는 사례들이 존재하지만 자율규제의 한계상 해당 게임사에 대한 사실관계 조사 및 보상조치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공정위는 2019년 확률형 상품에 대한 확률 정보를 표시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상품 등의 정보제공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으나 개정 작업이 중단됐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에서야 국회 입법을 통해 게임산업법 전부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제까지는 민간의 자율규제에 맡겨 두었지만 이제 자율규제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면서 “일부 법적인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 역시 “공정거래법상에 거짓, 과장 등의 기만적 방법을 통한 소비자 유인에 대한 조치는 가능하지만 일률적인 확률 공개 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며 “업계 등의 반대로 입법 공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확률 공개는 영업비밀, 게임산업 발전 저해 목소리도

업계를 중심으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는 영업비밀 공개와 해외 게임과의 역차별 우려 가능성 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 2월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게임 진흥보다 규제 성격이 강하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영업 비밀에 해당할 수 있는 정보까지 제출 의무를 두고 있는 점, 게임사업자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 제출이나 진술 등의 실태조사 등을 문제 삼았다.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신지혜 교수는 통화에서 “게임산업에서 아이템의 강화 등의 작은 요소들을 어떻게 조절하고 균형을 맞추는가에 게임의 성패가 달려 있고, 확률형 아이템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를 모두 공개하는 것은 영업비밀 공개 측면의 우려가 있다”면서 “확률의 임의 조작 등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확률 공개가 게임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21대 국회서만 확률형 아이템 규제법안 4건 발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법안은 21대 국회에서만 4건이 발의됐다.

 

사실상 정부안에 가까운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발의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법률안’(게임산업법)에는 게임제작업자 또는 게임배급업자가 게임을 유통하거나 이용에 제공하기 위해서는 해당 게임에 등급, 게임 내용 정보,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종류별 공급 확률정보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표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민주당 유동수 의원은 ‘컴플리트 가챠(Complete Gacha, 수집형 뽑기)’ 금지 법안을 발의했다. 컴플리트 가챠는 여러 아이템을 모아 또 다른 아이템을 완성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확률을 통해 얻은 아이템을 조합 등을 통해 또다시 확률 게임을 하는 이중·삼중 구조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에 게임물이용자권익보호위원회를 두고, 게임업자도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게임물이용자위원회를 두는 법안을 발의했다.

해외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가 진행 중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민주당 유 의원실에 따르면 중국은 2018년 5월 전 세계 최초로 확률형 아이템의 모든 확률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령을 시행 중이다. 2019년 4월부터는 뽑기의 확률을 백분율이 아닌 ‘필요시행횟수’로 표기하도록 신규 판호(서비스 허가) 규정을 개정했다.

 

영국은 확률형 아이템을 유사 도박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도박법의 범주에 넣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비디오 게임에서의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간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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