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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지겨울 수 없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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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6 22:49:22 수정 : 2021-04-16 22: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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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과거의 기억을 곱씹어볼 때가 있다. 기억을 되새기다 보면 그때 알고 있던 것들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땐 몰랐던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사소하게 넘겼던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2014년 봄 팽목항도 그런 기억 중 하나다.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나는 한 달 넘게 팽목항을 맴돌았다. 처음 내려갔을 땐 이미 배가 가라앉고 2주가 지난 상황. 가족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시신을 다 건질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해서, 팽목항에 남은 이들은 ‘실종자 가족’이 아닌 ‘사망자 가족’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시신 발견 안내문이 붙으면 ‘우리 아이이길’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들었다. 죽음은 더이상 특별한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저 도처에 널려있었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인생에서 그렇게 죽음을 깊숙하게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한동안 ‘나도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란 두려움에 시달렸다. 희생자의 부모보다는, 희생자에 감정이입을 한 것이다. 당시 가장 큰 공포는 ‘나의 죽음’이었다.

 

몇 년이 흘러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내가 어떤 존재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부모가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키웠겠구나’란 생각을 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리고 종종 2014년 봄의 기억이 떠올랐다. 주로 아이가 예뻐 보일 때다. 아이를 목욕시킨 뒤 말간 얼굴로 환하게 웃는 아이를 안으면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그럴 때면 문득 그 봄이 떠올랐다. 그때 그 부모들은 이런 아이를 잃은 거였구나,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 

 

특히 많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실종자 가족이 머무르는 진도 체육관 앞에 서 있는데, 한 중년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전화통화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응. 이제 왔어. 어디로 가버린 줄 알았는데 다행히 왔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는 마치 자녀의 대학입학이나 결혼 소식을 전하듯, 밝은 목소리로 아이의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이가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인데, 시신을 기다리고 마침내 시신을 찾은 것을 기뻐해야 하는 상황. 어떤 심정이었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내게 가장 큰 공포가 ‘나의 죽음’이 아닌 ‘아이의 죽음’이 된 지금, 그때 기억을 되새겨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인이 상사의 ‘자녀상’에 다녀온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상주에게 말을 붙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고, 그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은 장례식장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나 역시 수많은 부고 기사 중 자녀상 부고엔 눈이 한번 더 멈춘다. 이처럼 자녀를 잃은 아픔이 얼마나 큰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지겹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물론 이렇게 만든 것은 정치권과 언론의 잘못이 크다.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은 나 역시 탐탁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녀를 잃은 이들의 슬픔까지 지겹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7년이면 그만 말할 때도 됐다고 말하지만 자녀를 먼저 보낸 슬픔은 70년이 지나도 무뎌지지 않을 것 같다. 4월만큼은 그저 부모들의 슬픔을 존중해주는 것이 어떨까. 애달픈 마음들까지 지겹다고 깎아내리지는 말았으면 한다. 

 

김유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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