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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가스라이팅’으로 떠들썩
숭고함을 모르는 아둔함서 비롯

한 여자 연기자가 연애 시절의 다소 기이한 일로 큰 비난을 받고 있다. 과거 연인이던 남자 연기자를 조종했다는 당사자로 소환된 서예지씨의 이야기다. 이 사람의 과거 연인으로 지목된 연기자는 드라마 촬영 중 상대 연기자에게 시종 퉁명스럽게 대했는데, 이는 서예지의 주문이었다는 의심이 불거지며 ‘가스라이팅’ 의혹도 퍼져나가는 중이다. 이 연기자는 드라마 제작진과 불화를 겪고 대본 수정 등의 소동 끝에 결국 중도 하차했다.

둘의 기이한 연애놀음으로 방송사는 물론이거니와 작가, 감독, 상대 배우에게 손실을 입혔다. 공개 사과를 했지만 비난을 막거나 사태가 수습할 기미는 안 보인다. 앞선 인터뷰에서의 거짓말들, 스태프 갑질, 스페인 유력 대학교 출신이라는 등등 이 소동의 장본인에게 달라붙은 논란과 의혹은 눈덩이처럼 부풀고 커지는 중이다. 서예지를 내세운 광고 영상들이 삭제되거나 비공개로 바뀌고, 새 작품 출연 논의는 중단되었다.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사는 연기자로서의 커리어가 중단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장석주 시인

둘은 어쩌다가 이런 위기에 빠졌을까. 이번 사건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하며 상대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스킨십은 안 된다’ ‘행동 딱딱하게 잘해라’ ‘로맨스 없고 스킨십 없게 잘해라’ 같은 연인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남자는 군말없이 따랐다. 이 연애놀음에는 밋밋한 일상의 조각난 지질함만 있을 뿐, 어느 구석에도 깊은 사고의 흔적이나 타인에 대한 존중감은 안 보인다. 우리 삶이 말초 감각을 만족시키려는 활동과 사회적 성공만을 향해 질주할 때 우리는 일상 너머 숭고함과의 고리가 끊긴 채 쉽게 비천함으로 추락한다.

그렇다면 숭고함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감각 지각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것에 다가갈수록 느끼는 두려움과 아름다움을 숭고라고 뭉뚱그려 말한다. 숭고함은 그것에 견줘서 ‘더 이상 큰 것은 없다’는 느낌 속에서 나오는 두려운 감정이다. ‘숭고(崇高)’라는 단어는 이미 그 바탕에 ‘높이’라는 의미를 품는다. 크고 높은 것, 근원을 알 수 없는 심연, 그 무엇과 비교할 바 없이 위대한 것을 꼽는 단 하나는 신이리라. 그러니까 숭고함이란 신적인 것과의 마주침에서 나오는 미적 쇄신의 기쁨, 즉 경외감이 그 바탕이다.

숭고함은 번개와 천둥, 굉음과 용암을 토해내는 거대한 화산 같은 자연현상들이 그렇듯이 초자연적인 신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광활한 우주와 수 억 광년을 잇는 별들의 궤도를 관찰할 때, 그리고 우리 눈길 저 너머의 아득한 수평선을 품은 바다나 가파르게 솟은 직벽(直壁)의 위용을 드러내는 고산(高山)의 웅장한 산세 같이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규모에서 우리는 얼어붙는 듯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 내면을 직격하는 두려움은 인간의 미적 감식 능력을 초과하는 알 수 없는 것, 몸으로 가 닿을 수 없는 웅장한 대상에서 비롯한다. 그것들은 말을 잃게 하고 오직 형언할 수 없는 전율 속에서 경탄만을 자아낸다. 숭고한 감정이 자극하는 것은 우리 안에 품은 인간적 자질들, 즉 우리 안에 깃든 왜소함, 지질함, 유한함, 무력감 따위다.

우리에게 먹고, 연애하고, 음주와 오락을 즐기는 일상 행위들 말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숭고함을 겪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작고 지질한지에 대한 각성으로 이끌고, 우리의 아둔함을 일깨우는 바가 있다. 아울러 숭고한 감정을 겪는 가운데 자기 성찰과 함께 어떤 한계들, 즉 경험의 비좁음과 사유의 메마름, 거기서 비롯되는 태도, 교양, 문화와 같은 상징 자본의 빈곤에서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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