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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녹음이 짙어지기 전 자연의 신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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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6 22:46:08 수정 : 2021-04-16 22: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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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의 ‘파랑과 보라의 조화를 이룬 수련들’

봄볕을 시샘하던 비가 그치자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기를 머금은 나무 사이로 연녹색 잎들이 돋아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싱그러운 아침이다. 자연의 변화를 새들도 아는 듯 지저귀는 소리가 한결 청아하게 들린다. 지금 이 순간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소중하고 한가롭게 보내고 싶다. 예술가도 그랬을 듯하다. 자연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려 한 화가가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였다. 그는 자연 속에 파묻혀 빛과 색의 변화를 좇아 평생을 보냈다.

모네는 자연의 시각적 진실에 이르는 방법으로 대상 표면에 나타나는 빛의 변화와 색의 변화를 주목했다. 자연은 고정된 존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성이요, 결정된 상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임을 나타내려 했다. 자연 속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해 간다는 생각을 갖고, 빠른 기교로 빚어낸 색 점으로 빛과 색의 효과를 그림 안에 담았다.

인상주의 운동은 8회에 걸친 전시회로 끝났지만, 모네는 말년에도 지베르니 마을에 정원을 만들고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모습에 몰두했다. ‘파랑과 보라의 조화를 이룬 수련들’은 그 정원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그린 그림이다. 사실적으로 나타내진 않았지만 바람 소리가 들리고 물결의 흔들림이 보이는 듯하다. 물위의 수련 잎과 꽃과 줄기가 서로 구분되지 않고, 파랑과 녹색 보라색의 대비와 조화만을 남기고 있다. 주변의 연녹색 버드나무와 파란 하늘도 그 모습을 감춘 채 물 위에 드리운 그림자와 색채들의 향연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 모든 것은 모네가 수련이란 소재보다 색선들로 이룬 색채 효과와 뉘앙스만을 더 중요하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 점이 그 후 미술가들로 하여금 그림의 내용보다 방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미술가들은 ‘무엇을 그리느냐’보다 ‘어떻게 그리느냐’에 매달렸고, 새롭고 다양한 창작방법으로 향했다. 모네가 자연에서 얻은 교훈이 새로운 미술의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녹음이 짙어지기 전 지금 이때의 자연이 우리 마음을 신선하게 하는 것처럼.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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