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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서울 용산 여행박사 사옥의 엘리베이터 벽에 이런 안내문이 붙었다. ‘택배 기사님, 저희 엘리베이터가 좀 많이 느립니다. 많이 답답하시죠? 올라가시기 전에 미리 카페에서 과일주스 한 잔 주문하시고 올라가세요. 시원한 과일주스 한 잔 드시고 조금이나마 파이팅~. 계산은 제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안내문을 붙인 사람은 정주영 여행박사 대표였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물 한 잔 대접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트럭 서비스회사인 PIE는 컨테이너 작업자들의 부주의로 운송계약의 60%가량이 잘못 배달될 정도로 운송 실수가 잦았다. 이에 따른 손실이 연간 25만달러에 달했다. 경영진은 에드워드 데밍 박사에게 진단과 처방을 의뢰했다. 박사의 처방은 통상적인 직원 재교육이나 연봉 인상이 아니었다. 작업자들의 책임감 결핍이 원인이라고 생각한 그는 일꾼이나 트럭 운전사로 불리던 이들의 호칭을 ‘마스터(장인)’로 바꿀 것을 회사에 권고했다. 호칭을 변경한 지 한 달이 지나자 배송 실수가 10%로 확 줄었다. 작업자들을 장인처럼 대우했더니 장인처럼 행동한 것이다. 요즘 일부 대기업에서 직원을 ‘매니저’나 ‘프로’로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4일 낮 서울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 앞 아파트 단지에서 집단 말싸움이 벌어졌다. 발단은 택배기사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택배기사들은 아파트 측이 안전사고와 보도 훼손 등을 이유로 단지 내 택배차량 진입을 금지하자 인도에 택배 상자를 쌓기 시작했다. 통행에 불편을 느낀 주민이 “야! 택배!”라고 소리치자 택배기사들이 “사람한테 ‘택배’가 뭡니까?”라고 받아쳤다. 서로 간의 격한 고성은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겨우 잦아들었다.

택배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이유나 목적에서든 사람을 택배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시인 김춘수는 ‘꽃’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타인을 꽃으로 대접하면 정말 그는 꽃 같은 사람이 된다. 택배보다 사람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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