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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분지 개발, 탄소 흔들어 깨우는 것… 기후재앙 불보듯”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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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04 06:00:00 수정 : 2022-08-04 08: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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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환경운동가 레미 자히가 인터뷰

석유·가스 매장지 30곳 경매 내놔
오일머니 사실상 정치권만 배불려
분지 아래 290억t 규모 탄소 저장
파헤치면 대기중으로 퍼질 가능성

개발 자원 대부분은 선진국이 수입
기후변화 막자더니 ‘내로남불’ 처사
국제환경회의, 비용없어 꿈도 못꿔
한국도 위기 빠진 콩고분지 관심을

콩고 분지를 아십니까? 아프리카의 중앙에 펼쳐진 336만7000㎢의, 인도보다 넓은 우림이 있는 곳입니다. 아마존 다음으로 크죠.

아마존에 견줄 만한 것은 면적만이 아닙니다. 우림 사이로 흐르는 콩고강은 아마존강 다음으로 넓고 유량이 풍부합니다. 브라질이 아마존의 60%를 차지하듯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이 콩고 분지의 60%를 점유하는 것마저 닮은 꼴이죠. 그런데 콩고 분지가 아마존 ‘파괴의 역사’마저 닮아가려 합니다.

콩고 분지 전경. AP연합뉴스

‘우리의 우선순위는 지구를 구하는 게 아니다.’

얼마 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민주콩고의 선임 기후변화 전문가인 토시 음파누 음파누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죠. 민주콩고는 우림 내 석유·가스 매장지 30곳을 경매에 내놨습니다. 지난달 28일부터 경매가 시작됐죠. 아마존의 전철을 밟겠다는 콩고 분지를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까요?

민주콩고에도 환경운동가들이 있습니다. 레미 자히가(25)는 콩고에서 나고 자란 젊은 활동가입니다. 현지 대학에서 광물 탐사와 지질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콩고 분지 보호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오전(한국시간)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그를 만났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이 너무해!

외신에서는 8월 이후 경매 기사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에게 최근 소식부터 물었습니다.

“경매는 이제 막 열렸고, 입찰할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가스 블록은 10월까지, 석유 블록은 내년 2월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입찰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기업은 없지만 아프리카에는 셸이나 토탈처럼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일 메이저가 있으니까 어떻게 될지 지켜 봐야죠.”

펠릭스 치세케디 민주콩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산림 파괴를 중단하고 토양 회복에 힘쓰겠다는 ‘산림·토지 이용 선언’에 동참했습니다. 국제사회로부터 5억달러(약 6547억원) 투자까지 약속 받았죠. 그런데 반년 만에 말을 뒤집었습니다.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죠. 국제사회 지원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다가올 선거 때문일 수도 있어요.”

민주콩고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데 치세케디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급전’이 필요했던 게 아니겠냐는 겁니다.

콩고 분지를 덮은 울창한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그런데 나무가 빨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탄소가 콩고 분지 땅 밑에 저장돼 있습니다. 식물이 죽어서 분해되면 품고 있던 탄소가 다시 외부로 배출됩니다. 그런데 축축한 환경에서는 식물이 완전히 썩을 때까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기 때문에 땅에 차곡차곡 탄소가 쌓이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토양을 ‘이탄지’라고 합니다. 이탄지는 전 지구 토양의 3%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숲이 흡수하는 탄소보다 이탄지에 들어있는 탄소가 두 배나 많습니다.

콩고 분지에는 290억t의 탄소가 들어있는데요, 세계 2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의 20년치 탄소 배출량에 맞먹습니다. 석유나 가스를 뽑기 위해 분지를 파헤치는 건 땅에 잠든 탄소를 흔들어 깨우는 일이죠. 자히가는 대화 내내 “콩고 분지 개발은 기후 재앙을 부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궁금했습니다.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민주콩고 국민들에게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분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당키나 할까 하고 말이죠. 자히가도 인정합니다.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를 이미 겪고 있어요. 홍수가 나는 바람에 집을 잃고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된다든가 가뭄 때문에 농사를 망쳐 당장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걸 기후위기로 연결 짓지는 못해요. 당장 어디서든 돈이 나왔으면 좋겠고, ‘전쟁이나 일어나지 말아라’ 라는 게 보통의 생각이죠.”

민주콩고의 산유량을 최대한 늘리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늘어난다는데 그럼 가난 구제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닐까요?

“오일머니가 국민을 배불리지 않을 거라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다이아몬드도 있고, 구리, 코발트, 리튬도 많아요. 이걸 채굴해서 팔았지만 가난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어요. 자원을 판 돈은 지도자의 주머니만 불릴 뿐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지도자의 가족들에게 흘러가요. 우리는 정치가 불안하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힘을 잃으면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해요. 그래서 가족을 안전한 나라로 보내놓고 이쪽으로 돈을 부치죠. 이런 사람들이 국민을 생각할까요? 인프라 같은 걸 고민할까요? 콩고 분지를 희생한 대가로 국민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겁니다.”

지난 4월 공개된 민주콩고 정부의 자체 감사 결과도 자히가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정부는 20년 전 콩고 분지를 상업적 벌목에 추가로 양허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역대 장관 6명이 줄줄이 18건을 불법으로 허가해줬다는 내용입니다.

◆선진국도 너무해!

해도 너무하단 생각이 듭니다. 민주콩고에 비난을 쏟아붓기 전에 이 나라를 조금만 더 알아봅시다.

민주콩고는 내전의 블랙홀 같은 곳입니다. 1960년 벨기에에서 독립한 이후 수십년 동안 내전의 늪에 빠졌습니다. 2018년에야 처음으로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

내전의 중심엔 자원이 있습니다. 자히가의 말대로 어마어마한 양의 다이아몬드, 구리, 아연, 콜탄, 리튬의 채굴권을 뺏기고 빼앗는 싸움이 끊임없이 벌어졌습니다. 그럼 광물의 수요자는 누굴까요? 미국과 유럽, 한국, 중국, 일본 같은 나라입니다. 전기차 배터리, 휴대전화에 없어서는 안 될 광물입니다. 콩고 분지에서 퍼올릴 석유와 가스를 사가는 것도 결국은 선진국입니다.

그러다 한번씩 ‘지속가능한 발전을 돕겠다’며 지원금을 내놓겠다 약속하지만, 그대로 지키는 경우는 드뭅니다. 1일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선진국이 2021∼2025년 콩고 분지 보호 기금으로 약속한 15억달러 가운데 실제로 들어온 건 아직 한 푼도 없습니다. 노르웨이가 1억5000만달러를 투자했는데 이 가운데 70%가 각종 행정 비용으로 날아갔다고 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로는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한다며 아프리카에 손을 내밀기도 합니다. 이탈리아는 지난 4월 콩고민주공화국과 천연가스 수입 계약을 맺었고, 독일과 스페인 등도 잇따라 아프리카와 가스 신규 계약을 맺었습니다. 모두 기후변화를 막자고 목청 높이는 나라들입니다. 아프리카 국가 입장에서 보면 ‘내로남불’로 보일 법한 상황이죠.

“오염을 일으킨 사람이 비용을 지불하는 건 당연한 원칙입니다. 우리는 숲을 보호해야 해요. 수백만의 콩고인이 콩고 분지의 물과 나무에 기대 살아가요. 선진국은 필요할 때마다 우리한테 손을 벌립니다. 아프리카 환경을 망가뜨린 건 그들이예요. 그러면서 왜 제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죠? 왜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지 않나요?”

풍부한 자원을 갖고도 민주콩고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가난합니다. 국민 10명 중 7명은 하루에 1.9달러 미만으로 사는 극빈층이고, 절반이 불완전 고용입니다. 제대로 월급이 나오는 일자리는 20% 정도로 추정됩니다.

콩고민주공화국 환경운동가 레미 자히가가 ‘지구를 구하라, 미래를 구하라’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콩고 분지 보호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본인 제공

자히가와의 인터뷰도 전력 사정이 나빠 몇 차례 미뤄진 끝에 성사됐습니다.

“저는 2019년 이후 제대로 고용돼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활동도 어디서 지원을 받거나 하는 게 아니예요. 저를 부양하는 건 가족들입니다. 정부 연줄 없이 취업을 하는 건, 특히나 저처럼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에겐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민주콩고에서 환경운동을 한다는 건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인권 단체 ‘글로벌 위트니스’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에서 목숨을 잃은 환경운동가는 227명입니다. 이 중 15명이 민주콩고 운동가입니다. 자히가도 때때로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구 반대편 한국 기자의 인터뷰에 응해준 이유가 뭘까요?

“우리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이야기가 확성기처럼 크게 들렸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선진국의 환경 단체처럼) COP같은 글로벌 회의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고 싶어요. 하지만 외국에 나갈 비용도 없고, 비자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에서 콩고 분지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콩고 분지가 파괴된다면 그 끔찍한 결과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않을테니까요.”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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