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아이오닉5·아이오닉6부터 기아 EV9까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EV) 전용 플랫폼 E-GMP가 일제히 적용된 이 세 모델은 ‘세계 최고’라는 공통 수식어를 가졌다. 2022년 아이오닉5, 2023년 아이오닉6에 이어 올해 기아 EV9까지 ‘월드카 어워즈(2024 World Car Awards)’에서 세계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된 현대차·기아의 ‘자랑거리’들이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들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전기차 연구개발의 핵심 기지인 ‘남양기술연구소’가 있다. 1995년 경기 화성시 남양읍에 세워진 남양연구소는 신차와 신기술 개발은 물론 디자인과 설계, 평가 등 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시설을 한데 모은 현대차그룹 전기차 기술력의 산실같은 곳이다.
지난 27일 현대차그룹 연구개발의 심장인 남양연구소를 직접 찾았다. 전기차 개발의 핵심 시설로 꼽히는 ‘배터리 분석실’과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 전기차뿐 아니라 상용차에 대한 시험도 이뤄지는 ‘상용내구시험동’과 ‘상용환경풍동실’ 곳곳을 돌아봤다. 엄격한 보안이 요구되는 만큼 사진촬영이 금지됐고, 휴대전화 앞뒤 카메라에 보안 스티커를 붙인 후에야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미세한 배터리 격차가 경쟁력 가른다”
우선 살펴본 곳은 남양연구소 기초소재연구센터 소속 배터리 분석실이었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분석해 세부 구성 물질을 연구하는 곳이다. 배터리는 전기차 주행거리와 충전속도 등 핵심 성능을 결정하고, 가격에도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핵심 부품이다. 배터리 분석실에서는 배터리셀을 구성하는 소재를 정밀 분석하고, 이를 통해 셀의 성능과 내구성, 안정성 등을 전체적으로 평가한다.
배터리 분석실은 ‘드라이룸’ 환경으로 운영된다. 실내 온도는 영상 20도가량으로 유지되고, 습도는 이슬점이 영하 60도 이하인 수준으로 낮춰 관리한다. 이재욱 재료분석팀장은 “전기차 배터리는 소재 특성상 수분에 매우 민감하다”며 “드라이룸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셀을 해체하고 분석을 진행해야 신뢰성 있는 분석 결과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소재 기술에 공을 들이는 건 이 기술이 차세대 배터리 개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배터리 소재의 특성을 이해하고 개선하면서 상품 경쟁력을 만들 미세한 격차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에는 제조사로부터 납품받은 배터리를 탑재만 했던 현대차그룹이 자사 전기차에 최적화된 배터리를 만들어내고 중장기적으로는 차세대 배터리의 자체 생산까지 내다보는 전략을 읽을 수 있었다.
◆가혹한 테스트 반복…최적의 성능·품질 위해
다음으로 전기차가 양산되기 전까지 성능과 품질을 개선하는 전동화시험센터 내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로 이동했다. 핵심 구동계인 모터와 인버터 등 성능을 사전 개발하고, 실차 효율을 평가해 전기차가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 시험실에서는 실도로에서 이뤄지는 주행 테스트와 달리 가혹한 테스트를 반복해서 진행한다”면서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모사해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신속히 파악한다”고 전했다.
실제 시험실에 들어서자 유리창 너머로 ‘위잉’ 소리를 내는 모터 소리가 들렸는데, 테스트에 사용되는 동력계 장비 수에 따라 1축과 2축, 4축 동력계 시험실로 나눠졌다. 전동화구동시험 3팀 곽호철 책임연구원은 “모터 단품 시험부터 차량 양산까지 종합적인 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3가지 동력계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며 “동력계 장비의 개수에 따라 크게 1축과 2축, 4축 동력계 시험실로 나눠 운영된다”고 말했다.
특히 가장 규모가 큰 4축 시험실에는 아이오닉5 한 대가 시험 평가 중이었다. 1·2축 시험실이 배터리 시뮬레이터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4축 시험실에서는 실제 전기차의 구동계 전체에 대한 시험 평가가 진행된다. 탑재되는 배터리를 직접 활용하고, 운전자가 차를 모는 것과 같은 조건에서 평가가 이뤄진다. 아이오닉5 운전석에는 사람 대신 ‘자동 운전 로봇’이 자리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운전자의 역할을 대체하는 자동 운전 로봇은 두 발과 팔 하나로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 변속기 등을 조작할 수 있다고 했다.
◆‘고장 없는 차’가 최종 목표
남양연구소 내 상용차 연구 시설인 상용시스템시험동은 1만4515㎡(4391평)의 널찍한 공간에 상용차 개발·평가에 필요한 300여가지 시험을 할 수 있는 55대의 장비를 갖춘 곳이다. 프레임과 보조 브레이크 등 시스템 내구 검증부터 제동, 차량 부식도까지 상용차의 모든 성능을 검증해 ‘고장 없는 차’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신재민 상용내구시험팀 파트장은 “상용차는 보통 주행거리가 누적 100만㎞로 승용차보다 길고, 가혹한 환경에서 운행돼 내구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시스템·부품 단위로 내구성 검증을 하면 실차 시험보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시험실에서는 로봇 팔이 쏠라티 미니버스의 문을 일정한 강도로 열고 닫기를 반복하면서 부품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테스트에 한창이었다. 이 같은 내구성 평가는 짧게는 24시간에서 길게는 몇 달 간 계속된다는 설명이 뛰따랐다.
이어 둘러본 곳은 ‘NHV(소음·진동) 다이나모 무향실’로 높이 7.5m에 달하는 거대한 방의 벽과 천장이 웅장해보이기까지 했다. 주변의 소음을 제거해 엔진·실내외 소음 등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흡음재인 ‘웨지’ 1만3000개가 빼곡히 부착돼 있었다.
◆전세계 최대 규모 풍동실…세계 각지 맞춤형 시험
마지막으로 살펴본 상용환경풍동실은 상용차의 주행 종합시험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제어실로 입장하자 엑시언트 수소전기 트럭이 서있는 풍동실이 눈에 들어왔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풍동실 규모는 길이 20m, 너비 10m, 높이 6.6m로 세계 최대 규모”라며 “길이가 18m에 달하는 전기 굴절버스와 높이 4m의 이층 버스도 이곳에서 시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풍동실의 실내 온도는 영하 40도부터 영상 60도, 습도는 5%부터 95%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 세계 곳곳의 극한 성능 시험에 대비할 수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실제로 온도가 영상 35도로 설정된 풍동실에 들어가보니 천장과 측면에 설치된 태양광 장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과 빛으로 한여름 후덥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또한 엑시언트 앞 부분으로 하얀 가스를 분사해 차량 주변의 공기 흐름을 확인하고, 공력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유동 가시화 시험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상용연비운전성시험팀 이강웅 책임연구원은 “풍동실에서 장소의 제약을 뛰어넘는 극한의 내구 시험을 거쳐 현대차그룹의 모든 상용차가 완성된다”며 “2022년부터 환경부와 경기도를 비롯해 미국, 독일의 기업과 정부 기관 등이 연구와 협업을 위해 총 27차례 풍동실을 찾았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남양연구소에서 전동화에 대한 연구개발(R&D)을 치열하게 진행하면서 그 성과물을 토대로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와 영향력을 한층 더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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