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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수단 ''다르푸르'' 인종청소

학살·약탈… 아프리카판 ''킬링필드''

수단 다르푸르 사태가 20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다. 다르푸르의 비극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과 이라크 전쟁, 미국 대선 등에 가려 그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다르푸르에서 매월 1만명이 유혈분쟁과 굶주림, 질병으로 숨졌다는 유엔 보고가 최근 있었으나, 20여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는지는 집계되지 않았다. 다르푸르 사태와 이 지역 난민의 실상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딸을 묻으면서 어머니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이는 영국 BBC방송의 힐러리 앤더슨 기자가 쓴 수단 다르푸르주 취재기의 일부다. 앤더슨 기자는 지난 7월 2주 동안 악몽 같은 다르푸르의 실상을 목격했다. 다르푸르의 어머니들에겐 자녀의 죽음을 위해 흘릴 눈물조차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아프리카 최대 국가인 수단에서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다. 서부 다르푸르주 사태로 지금까지 1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10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국제사회의 관심은 시들하기만 하다.
◆내전으로 얼룩진 국토=수단에서 내전이 시작된 것은 1983년이다. 아프리카계 기독교도 반군과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 정부군이 충돌한 이후 21년 동안 200만명이 숨졌다. 수단 내전은 지난 6월 반군과 정부가 내전 종식을 위한 선언문에 합의하면서 극적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다르푸르 지역의 반군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2월 ‘수단해방군(SLA)’과 ‘정의·평등운동(JEM)’ 등 반군단체는 수단 정부의 친아랍계 정책에 반발하며 다르푸르 지역에서 정부를 공격했고, 아랍계 무장조직인 잔자위드가 반격에 나서면서 이번 사태가 시작됐다. 다르푸르는 아랍계 유목민과 아프리카 흑인 종족들이 섞여 사는 곳으로, 두 민족이 물과 토지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분쟁을 벌여왔다. 이 같은 해묵은 다툼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수단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잔자위드는 아프리카계 주민을 무차별 학살, 킬링필드를 방불케 하고 있다.

◆피부색이 까만 게 죄인가=최근 국제사면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잔자위드는 다르푸르의 흑인 마을 수백곳을 불태우고 주민을 몰아냈다. 또 8살짜리 여자 아이를 비롯한 부녀자들을 조직적으로 성폭행하고 있다. 성폭행은 잔자위드 조직원들에게 인종청소의 한 방편으로 여겨진다. 다르푸르 흑인 여성을 강제로 임신시켜 피부색이 다소 밝은 아이를 낳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지역 문화가 부계 혈통을 따른다는 점에 착안한 교묘한 수법이다.
잔자위드 조직원들이 아프리카계 주민을 사슬로 묶고 산 채로 불태웠다는 보고도 있다. 잔자위드의 만행으로 지금까지 15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 가운데 20만명은 인근 국가 차드로 도피했으나, 나머지는 600km에 이르는 수단·차드 국경지대에 흩어져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이들은 언제 공격당할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외면당하는 인권=수단 정부는 다르푸르 사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오히려 잔자위드에 헬기와 무기를 제공해 인종청소를 돕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차드로 대피한 다르푸르 난민들은 잔자위드와 정부군이 함께 마을을 공격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서구 사회가 다르푸르 사태에 다소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가운데 유엔은 최근 이 사태를 끝내지 않으면 석유 수출금지 조치 등 경제제재를 내리겠다고 수단 정부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수단 정부는 이에 못이겨 수천명의 추가 병력을 다르푸르에 파견했으나 효과는 의심스럽다. 다르푸르의 면적은 한반도의 2배가 넘는다. 고작 몇천명으로 너른 사막지대에서 효과적인 군사작전을 벌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아프리카연합(AU)은 최근 주요국 정상회의를 열어 아프리카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 것을 유엔과 서구 사회에 요구했다. 다르푸르 난민의 인권은 정치 논리에 밀려 진흙탕에 묻혀 있다.
이의란기자/tom@segye.com

<난민들 ''지옥같은 생활''>
굶주림·질병으로 매달 평균 1만명 사망
무장세력 공격으로 구호품 전달도 못해

수단 서부 다르푸르주 난민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150만명에 이르는 난민 대부분은 아랍계 무장조직 잔자위드의 공격을 피해 수단·차드 국경지대로 흩어졌다. 이 지역은 척박한 사막지대로 건기에는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올라간다. 또 식수를 구하기 어려워 설사와 고열, 폐렴을 앓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잔자위드의 공격이다. 잔자위드는 삶의 터전에서 주민을 몰아낸 것도 모자라 난민촌을 급습하기도 한다. 특히 여성이 주요 표적이다. 잔자위드 조직원들은 아프리카 흑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남편이나 친척이 보는 앞에서 여성을 강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국가 차드로 대피한 난민 가운데는 성폭행 피해자가 상당하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하드자 마흐무드라는 여성 난민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딸이 강간당했다고 밝혔다. 저항하다가 다리에 총을 맞은 여성도 있다고 그는 전했다.
마리안 모하메드 아흐메드라는 난민은 두 달 전 잔자위드가 마을을 공격했을 때 차드로 도망쳤는데,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는 옷이 전부였다.
잔자위드의 공격 때문에 인권단체들의 식량 등 구호품 전달도 쉽지 않다. 이에 따라 난민들 사이에 영양실조가 만연해 있다. 유엔은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한 난민이 7만명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매달 1만명이 숨진 셈이다. 잔자위드의 공격으로 숨진 사람까지 합치면 사망자는 10만명을 웃돈다. 유엔은 또 다르푸르 난민의 사망률이 정상치의 6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의란기자/tom@segye.com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 대응

2003년 2월:수단 반군의 정부 공격으로 사태 시작

2004년 4월:유엔 수단 정부를 비난하는 미온적인 결의안 채택

2004년 6월: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다르푸르 사태는 대량학살 아니라고 규정

2004년 7월:미국·유럽연합 수단 정부에 사태 종식 촉구

2004년 9월: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 다르푸르 사태를 대량학살로 규정

2004년 9월:유엔 안보리,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 공격을 막지 않으면 수단 석유수출 봉쇄하겠다는 결의안 채택

2004년 9월:아랍연맹, 유엔 안보리 결의안 거부

2004년 10월:아프리카연합, 유엔에 수단 내정 간섭하지 말 것을 촉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