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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지 않는 조선왕국’ 꿈이 현실로

[파이팅 글로리아] 2부 바다를 지배하라 ⑤ 제2도약 준비하는 STX조선

◇STX가 아커야즈를 인수하며 크루즈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사진은 아커야즈의 크루즈선 이미지.
‘어린이 날’인 지난 5월5일 오후 8시. 황금 연휴의 마지막 날이지만 남산 STX타워에 모여 있던 STX그룹 직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STX의 세계 2위 크루즈선 업체 노르웨이 아커야즈 인수를 최종 승인했기 때문이다. STX는 지난해 10월 아커야즈 지분 39.2%를 8억달러에 사들이며 최대 주주에 올랐다. 하지만 ‘바다 위의 호텔’로 불리는 크루즈선 건조기술이 세계 조선업계 최강국인 한국으로 넘어간다는 위기감이 일면서 아커야즈 노조가 반발했다. 이탈리아·프랑스 등 다른 유럽국가들까지 아커야즈 노조와 동조해 연합전선을 펴면서 지난해 12월 EU는 반독점 조사에 착수했지만 결국 STX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5개월간의 긴 싸움에서 승리한 STX는 이를 계기로 세계 조선업계에 이름을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해가 지지 않는 조선왕국’을 향한 본격적인 행보에 날개를 달았다.

이번 결정이 아니더라도 STX조선은 2001년 법정관리 중인 대동조선을 인수, 7년 만에 시가총액 2조7000억원이 넘는 기업으로 키우면서 세계 조선업계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공격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칭기즈칸식’ 경영이 차츰 결실을 맺어가면서 세계 조선업계는 STX를 주목하고 있다.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STX조선=강 회장이 STX조선의 전신인 대동조선 인수에 사용한 금액은 1000억원. 하지만 그룹으로 편입된 지 7년도 안 돼 매출은 3259억원에서 2조1290억원으로 6.5배, 연간 수주액은 3억달러에서 104억달러로 무려 34.6배가 늘었다. 좁은 조선소 부지의 한계를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신공법 도입을 통한 세계 최고의 생산효율성으로 극복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STX조선은 2004년 육상건조공법인 SLS(Skid Launching System)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공법은 도크가 아닌 육상에서 선박을 2등분으로 건조해 해상에 계류된 스키드 바지(SKID BARGE)에 이동시킨 후 선박을 최종 완성하는 신개념의 건조공법이다. 도크를 추가로 확보하지 않고 기존 시설을 이용해 선박을 건조할 수 있어 공간만 있으면 어디서나 적용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STX조선 관계자는 “향후 중국,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서도 이 공법을 특허 출원할 계획”이라며 “원천기술 이전에 따른 해외 로열티 수입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1개의 도크에서 4척의 배를 동시에 건조해 한 번에 2척씩 배를 진수하는 ‘세미탠덤’ 방식도 STX가 자랑하는 기술이다. STX는 2006년 육상 건조로 한 해 동안 12척을 진수하는 세계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에도 육상에서 15척을 진수하며 세계 최고의 육상건조 회전율을 기록했다. 실세로 STX조선은 다양한 신개념 건조공법을 통해 평균 52일 걸리던 선박건조 기간을 30일 이하로 대폭 줄였다.

대형선박 건조에서도 STX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6월 초에는 세계 최초로 2만2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술과 경제성 측면에서 조선업계의 한계로 인식됐던 2만TEU를 넘어선 것이다. 이 컨테이너선은 2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2만2000개나 적재할 수 있으며, 갑판 넓이가 축구장 4개 크기에 달한다.

STX는 2004년 이후 건조척수나 건조량, 매출액 등 각종 성장지표를 매년 평균 40%씩 끌어올렸다.

지난 6월 12일 강덕수 STX그룹 회장(왼쪽)이 프랑수아피용 프랑스 총리와 조선·방위산업 분야 협약식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연간 건조척수는 2000년 14척에서 지난해 50척으로 257% 증가했고, 올해는 61척을 목표하고 있다. 수주금액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한 104억달러를 수주, ‘100억달러’ 시대를 열었다.

수주 선종도 기존 중형 석유제품운반선(PC선), 컨테이너선 위주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운반하는 LNG선, 1만3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초대형 유조선(VLCC) 등으로 대형화하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삼각편대’가 뜬다=STX조선은 국내 다른 조선소와 달리 세계 곳곳의 생산거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STX는 세계 조선시장을 삼분하는 한국(진해·부산조선소), 중국(다롄조선소), 유럽(아커야즈) 등 글로벌 3대 생산거점을 모두 갖췄다.

지역별 역할도 특화되어 있다. 진해조선소는 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대형선박 건조 기지이자 중국 등 신흥국의 추격에 맞서는 연구개발 센터로 육성된다.

중국 다롄생산기지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기초소재나 주요부품, 벌크선 등을 주로 건조할 계획이다. 지난해 기공식 이후 본격적인 수주에 나선 다롄기지는 현재 30억달러의 수주 잔량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시장은 최근 인수한 아커야즈의 몫이다. 아커야즈는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 독일 ‘메이어베르프트’와 함께 세계 크루즈시장을 삼분하는 강자로, 종업원 수만 2만여명에 달하며 크루즈선 2위, 중소형 페리(여객선) 1위 기업이다.

노르웨이·핀란드·프랑스·독일 등 세계 8개국에 18개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한국 조선소들이 갖지 못한 크루즈선 건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 1위의 조선 강국이지만 이 분야에서는 이렇다 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커야즈 인수는 조선업계에 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STX는 아커야즈를 통해 특수선, 해양플랜트, 크루즈선, 페리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는 ‘메카’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구축할 방침이다. 특히 프랑스의 ‘생 나자르’ 조선소는 아커야즈가 보유한 조선소 가운데 크루즈선을 주로 건조하는 핵심 기지인 데다 대형 군함을 비롯한 방산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강 회장이 최근 프랑스 프랑수아 피용 총리를 만나 프랑스 방위산업 분야에 대한 협력관계를 논의한 것은 아커야즈가 이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점을 말해준다.

STX 관계자는 “글로벌기지를 통해 STX조선은 범용 벌크선에서 고부가가치 대형선박, 해양플랜트, 특수선, 크루즈선에 이르는 최적의 선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됐다”면서 “2012년에는 아커야즈 100억달러, 국내 100억달러, 중국 50억달러 등 총 250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동 기자 kid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