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또 다른 이름… 보통 사람들의 통 큰 기부(종합) 10년간 월급 쪼개… 20년 적금 선뜻… 10명 중 3명 ‘평범한 이웃’… 아너 소사이어티 주인공 982명 입력 2015-12-23 13:23:53, 수정 2015-12-23 14:46:33
10년간 월급(120만원)을 아껴 마련한 1억원을 기부해 지난해 화제가 됐던 한성대 경비원 김방락(68)씨는 22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도 1년 전 결정(기부)이 제 인생에 가장 보람찬 일로 남는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는 부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전북 정읍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했던 김씨는 월남전 참전 이후 26년을 군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기부를 결심한 뒤 박봉의 경비원 월급을 쪼개서 적금을 들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경비실에서 버너로 밥을 해먹기도 했다. 기부한 1억원 가운데 1000만원은 한성대 학생 5명의 장학금으로 쓰였다. 지난해 강릉에서 우유 대리점을 운영하며 1억원의 기부 약정을 한 김형남(45)씨는 이날 통화에서 “2009년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새로운 일을 하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나는 이 정도만 가지면 된다. 어려운 분들을 위해 나누자’는 마음에 기부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남들의 시선이 걱정됐지만 막상 기부를 결정한 이후에는 오히려 삶 전체가 더 보람차고 즐거워졌다”고 덧붙였다.
현재 982명의 회원 가운데 직업별로는 기업인이 46%(452명)로 가장 많지만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4.5%(44명), 농어업인, 카센터 사장, 익명기부자 등 기타로 분류된 직업군도 28.9%(284명)를 차지했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현재의 위치보다 과거에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이겨낸 분들이 기부 약정식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을 듣다 보면 저절로 존경의 마음이 생겨난다”며 “이분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어려움도 긍정의 힘으로 극복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언제든 나누려고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기부 참여자들이 늘면서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도 선진국형으로 바뀌고 있다. 기존의 기업 중심에서 개인들의 십시일반 기부 참여가 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전 세계 150여개국을 대상으로 기부와 자원봉사 문화를 평가해 낸 순위를 보면 2010년 우리나라는 81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올해는 64위로 약진했다. 지난달 누적 약정액 1000억원을 넘은 아너 소사이어티는 미국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토크빌 소사이어티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로 성장했다. 덕분에 지난 9월에는 세계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세계공동모금회가 자선 라운드 테이블 행사를 한국에서 개최했다. 모금회 관계자는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개인 고액 기부자가 급격히 늘어난 우리나라 사례를 보고 세계가 놀란다”며 “공동체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선 한 사람의 기부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2007년 12월 출범 당시 참여자가 없어 6개월간 실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2008년 5월 남한봉 유닉스코리아 회장의 첫 가입을 시작으로 그해 6명, 이듬해 11명, 2010년 31명, 2011년 54명을 기록했다. 이후 2012년 126명, 2013년 210명, 2014년 272명, 올해 272명이 새로 가입했다. 연간 아너 소사이어티 300명 시대도 열릴 전망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는 “자기 자식에게 재산을 직접 물려주기보다 자식이 살아갈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사회적 기부를 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그러한 기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원을 일시 기부하거나 5년 이내에 1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하고 매년 나눠서 납부해도 가입할 수 있다. 1억원 약정회원의 경우 최초 300만원 이상을 내고, 나머지는 매년 2000만원씩 나눠서 내면 된다. 기부자는 실명을 밝히거나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익명 기부도 가능하다. 22일 현재 982명의 회원 가운데 익명 기부자는 127명이다. 기부자는 자신이 낸 기부금의 사용처를 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억원 중 절반은 용도를 지정하지 않는 일반기탁으로 내고, 나머지 5000만원은 교육이나 의료지원을 위해 써달라고 지정할 수 있다. 기부금은 소득세법에 따라 법정기부금으로 인정받아 본인 소득 금액의 100% 한도에서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가입문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02)6262-3092로 하면 된다. 조병욱·이재호 기자 brightw@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