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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도 힘든데 봉사 발길 끊겨 복구 막막”

수마 할퀴고 간 남부지방 르포
섬진강변 피해 주민 대부분 노인… 35도 더위에 자체 복구 ‘언감생심’
코로나 재확산에 지자체 자제령… 하루 1000여명 봉사자 절반 급감
“하우스 복구만 석달 걸릴텐데…” 황무지된 생계 터전 보며 눈시울

군장병들 구슬땀 19일 오전 광주 북구 드론공원에서 수해복구에 나선 육군 31사단 장병들이 물을 마시며 휴식하고 있다. 북구 제공

“지겹던 장맛비가 그치니 연일 푹푹 찌는 폭염에 코로나 사태까지 확산해 죽을 맛입니다.”

최근 집중호우와 섬진강 하천 제방 붕괴로 온 마을이 물에 잠겼던 전북 남원시 금지면 하도마을 주민들은 19일 폭염특보 속에서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치유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수해 복구 속도는 더뎠다. 연일 낮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땀으로 뒤범벅이 되기 일쑤인 데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자원봉사자들마저 대거 줄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지난 8일 섬진강 강물이 대거 불어나 제방이 무너져 큰 피해를 입었다. 가옥과 농작물이 모두 물속에 잠겨 54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주민 대부분은 65∼96세 노인들이어서 복구작업도 어려웠다. 암담해하던 와중에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한숨을 돌릴 즈음 코로나19 재확산 사태가 터져 다시 망연자실해졌다.

최희범(52) 이장은 “이제 쓰레기가 된 가재도구를 내다버리는 일만 조금 끝났을 뿐 쑥대밭이 된 보금자리를 되찾고 시설 재배지를 정리하려면 석 달 이상 걸릴 것”이라며 “그마나 각지에서 달려온 군인과 대학생, 종교단체 등이 큰 힘이 됐는데, 오늘은 코로나19 재확산 때문인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19일 오전 광주 북구 드론공원에서 북구청 직원들과 육군 31사단 장병들이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가운데 구청 직원이 물을 챙기고 있다. 광주 북구청 제공.

남원시에 따르면 집중호우가 발생한 지난 8일 이후 광복절 연휴 전날까지 매일 1200여명씩 총 8500여명의 봉사자들이 수해지를 찾았다. 이들은 침수된 주택 안팎을 정리하면서 쓰레기를 치우고 급식과 빨래봉사 등을 펼쳤다. 하지만 광복절 연휴에는 800∼900명, 이번주 들어서는 600∼300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이날도 일대 수해지 곳곳에서 복구를 거드는 손길은 대부분 군부대와 경찰, 자원봉사센터의 지원 인력이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방역 수칙이 강화된 데다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봉사 자제를 요청하는 터라 이마저도 언제 끊길지 모른다.

주민 김모(75)씨는 “도배장판을 해야 하고 이불, 옷가지 등 생활용품도 새로 구입해야 하지만 한껏 물을 머금은 벽체가 말라야 가능해 이마저도 불가능하다”며 “주민들은 여전히 남원시가 마련한 이재민 임시 거주시설을 이용하고 일부는 마을 정자나 집 옥상 등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동면 세전리 수해지에서 파손된 비닐하우스 정리작업 지원에 나선 35사단 정비대대 장병 박성민(21) 일병은 “피해 규모가 워낙 큰 데다 폭염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마스크를 쓴 작업은 30분을 넘기기 힘든 상황”이라면서도 “주민들이 하루빨리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힘 닿는 데까지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오전 광주 북구 드론공원에서 북구청 직원들과 육군 31사단 장병들이 폭우와 영산강 범람으로 인해 파손된 철재 구조물들을 정리하는 등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광주 북구청 제공.

이런 상황은 전국 수해지역도 마찬가지다. 수해 이후 개인과 단체에서 하루 최고 3000명가량 자원봉사자들이 찾았던 구례군은 전날부터 300명 안팎으로 대거 줄었다. 대한적십자사는 코로나19 재확산을 막기 위해 타지역 지원 활동을 중지했고 전남도와 군은 방역수칙 준수를 재차 당부했다.

특별재난지역인 충북 충주시와 제천시, 음성군 등 수해 지역도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아 지난 14일 3000명을 넘어섰던 봉사자들이 최근에는 1500명 남짓에 그치고 있다. 충주시 엄정면 탄방마을 김윤종 이장은 “자원봉사자들이 줄고 폭염이 지속돼 복구작업이 버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남원=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