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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부르고뉴에서 빚는 루 뒤몽을 아십니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관련이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 디지털기획 , 마이 라이프

입력 : 2019-08-24 12:00:00 수정 : 2019-08-26 17: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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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와인의 심장 프랑스 부르고뉴에 루 뒤몽 설립 박재화 대표 단독 인터뷰] 佛 와이너리 ‘메종 루뒤몽’ 박재화 대표 / 역사 전공 … 대학교수 꿈 / 모친 투병에 생계 고심 / 무작정 프랑스로 향해 / 처음 마신 와인에 반해 / 남편과 본격 양조 공부 / 1999년 와이너리 세워 / ‘땡처리 와인’ 수모 겪다 / 만화 ‘신의 물방울’ 등장 / 납품 한 달 새 매진 ‘대박’ / 와인 레이블에 ‘天地人’ / 하늘과 땅이 먼저라는 / 겸손한 삶의 철학 새겨
쥬브레 샹베르땡의 루 뒤몽에서 뫼르소 와인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박재화 대표

“2003년 부르고뉴는 너무 더웠어요. 포도가 빨리 익는 바람에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너무 높게 올라갔죠. 더구나 하지 말아야 할 젖산발효까지 해버렸어요. 안그래도 산도가 매우 낮은데 젖산발효까지 하면 산도가 더욱 떨어지거든요. 제 손으로 세번째 만든 와인인데 경험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결국 그 빈티지 와인은 제가 원하는 스타일로 나오지 못했어요. 어느 날 거래하던 한국의 수입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당신 와인이 안팔려서 원가에 땡처리했고 더는 못 살 것 같다’고 하더군요. 연간 600병을 팔았기에 60병만 사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소용없었어요. 너무나 절망적이었죠. 풀이 죽어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걱정 말아라 내가 다 팔아줄께’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남편 말대로 정말 1주일뒤에 기적이 일어난 거에요. 거래하던 일본의 수입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신의 물방울에 당신 와인 뫼르소(Meursault) 2003이 소개됐다’고 하면서 남은 와인을 모두 달라는 거에요”.

 

신의 물방울 9권에 등장하는 루 뒤몽 뫼르소 2003 비티스 제공

아직도 그때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 그녀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로마네 꽁띠(Romane Conti)가 생산되는 ‘세계 와인의 심장’ 프랑스 부르고뉴에 1999년 와이너리 메종 루 뒤몽(Maison Lou Dumont)을 세운 박재화(53) 대표. 나폴레옹이 사랑한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 쥬브레 샹베르땡(Gevrey Chambertin) 마을의 소박한 와이너리에서 그녀와 일본인 남편 나카다 코지(Nakada Koji·47))씨를  만났다. 루 뒤몽 와인 병 레이블에는 한자 ‘天地人(천지인)’이 새겨져 있다. 떼루아의 동양적인 표현인데 하늘과 땅이 먼저이고 인간은 나중이란 뜻이다. 와인의 캐릭터는 절대 인간이 결정할 수 없는 것. 기후와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겸손한 신념을 담았단다.

 

쥬브레 샹베르땡 포도밭을 살피는 박재화 대표

#고미술 복원사 꿈꾸던 거제 소녀 와인에 빠지다

 

와인은 주인을 닮는다. 루 뒤몽을 찾은 8월초 부르고뉴는 태양이 온 대지를 태워버릴 듯 맹렬하게 이글거렸다. 매일 밭일을 하느라 검게 그을린 영락없는 농부 아줌마가 “뭐하러 이렇게 먼곳까지 왔느냐”며 수줍은 미소로 반긴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포도재배 농부, 와인메이커, 와이너리 오너로 쉴틈없는 박 대표는 요즘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5시간동안 밭일을 한단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많이 어둡다. 근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와이너리에 딸린 작은 쥬브레 샹베르땡 포도밭으로 데려간다. 포도가 한참 무럭무럭 익을 시기인데 어찌된 일일까. 까맣게 쪼그라든 포도가 한송이에 꽤 많이 달려있다. “7월들어 두 차례 기온이 41도까지 오르면서 포도가 30%나 타 버렸어요. 너무나 가슴이 아파요. 저 뿐만아니라 올해 부르고뉴 전체가 비슷해요. 비라도 조금 내리면 뿌리가 신선해져서 잎이 빨리 떨어지지는 않을텐데. 포도 알멩이도 코딱지 만하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인간이 자연을 이길수는 없잖아요”. 

 

와인의 길로 빠지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박재화 대표

사실 완벽한 인간은 재수가 좀 없어 보인다. 뭔가 좀 모자라 구석이 있어야 인간미가 느껴지는 법. 루 뒤몽 와인은 여백을 꽉 채우지 않는 한폭의 산수화 같은데 자연을 따르며 겸손한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를 보니 이유를 알겠다.

 

사실 그녀는 역사학과 교수와 고미술 복원사를 꿈꾸던 소녀였다. 거제의 여고를 나와 부산의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는데 졸업 논문이 부산 범일동 조선방직에 대한 연구였다. 조선방직은 일제 강제점령기때 혹독한 노동시간과 낮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수탈하던 공장이다. “교수님이 역사 공부하면 밥 못 먹고 산다고 얘기했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때는 상황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며 건방을 떨었죠. 졸업하면 바로 교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박 대표는 20대 후반까지 시간 강사로 일하며 박봉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엄마가 병으로 쓰러진 것. “엄마가 너무 많이 아팠어요. 그런데 간호는 할 수 있었지만 병원비를 제대로 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어요. 그게 너무 서글펐어요. 그 나이가 되면 병원비도 내고 해야하는데... 알부민 주사 처방에 돈이 많이 들어갔지만 형제들 사정이 다들 뻔해서 돈 얘기도 못했죠”. 결국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박 대표는 그때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정말 쓸데없는 공부를 했구나.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포도밭에서 남편 나카다 코지씨와 포즈를 취한 박재화 대표

이에 전문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실용적인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박 대표는 평소 관심이 많던 고미술품 복원분야를 인생의 목표로 정하고 프랑스 유학을 결심한다. 박 대표가 그렇게 1996년 무작정 한국을 떠나 도착한 곳이 바로 와인의 심장 부르고뉴의 디종(Dijon)이다.  “그때 와인은 전혀 문외한이었어요. 당연히 디종이 와인으로 유명한지도 전혀 몰랐죠. 프랑스어부터 배워야했기에 학비가 가장 싼 학교를 샅샅이 찾았는데 바로 디종에 있더군요. 단지 어학 공부를 위해 정말 아무 생각없이 디종으로 간 거에요. 그야말로 그냥 이곳에 툭 떨어진 것인데 정말 운이 좋았죠.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일이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 말이에요”. 

 

박 대표는 프랑스어를 배우다 같은 반에서 남편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일본에서 소믈리에로 일하던 남자는 와인을 공부하러 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미친 남자’라고 여겼단다. 아니 공부할 것이 없어서 알코올을 공부하니. 싹수가 노랗게 보였다. “수업도 제대로 안나오고 먹고 마시기만 하더라구요. 그런데 어쩌다 한번 수업 시간에 만나면 프랑스 말이 쑥쑥 늘어 있는 거에요. 나는 학교와 집만 오가며 녹음기로 달달 외우며 공부해도 막상 밖에 나가면 입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말이죠. 아...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었구나. 그 남자를 나쁘게만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말을 배우고 있었던 거죠”. 

 

어느날 박 대표는 “와인을 마시러 가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말을 건네는 그를 따라갔다. 단지 프랑스 문화를 한번 이해해보려 한 것 뿐인데 그 한번이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대학때 친구들과 답사다니면서 실려갈 정도로 소주를 왕창 마셨죠. 그런데 그때는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취하려고 마셨던 거에요. 하지만 처음 마주한 와인은 취하려고 마시는 단순한 알코올이 아니더군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와인은 즐기는 문화라는 것이 느껴졌어요. 이런 문화를 한국에 수입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는 프랑스에 정착할 생각은 없었기에 한국으로 와인 문화를 가져가야겠다고 작정한거에요.”

 

그날 이후 박 대표는 인생의 경로를 와인의 길로 확 틀었다. 남편과 함께 외국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브루고뉴 본의 농림부 산하 와인스쿨 CFPPA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포도 재배, 양조, 마케팅 공부에 돌입했다.  

 

셀러에서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박재화 대표

#네고시앙에서 부르고뉴 최고의 와인 생산자로

 

CFPPA에서 공부하는 동안 한국의 수입사에서 시장을 파악하는 인턴십까지 마친 박 대표는 남편과 함께 1999년 7월 꿈에 그리던 와이너리 루 뒤몽 설립한다. 수입사에서 함께 일하자고 러브콜을 보냈지만 나만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생산자의 길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남이 만든 와인을 오크통째 사서 숙성 시킨 뒤 레이블만 루 뒤몽을 달아 판매하는 네고시앙으로 시작했다. 직접 만든 와인은 아니지만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점수를 매기는 전문지 (HACHETTE)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입소문을 탔다.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10년치 와인 가이드를 모두 모아 꼼꼼하게 분석했다. 생산자별로 와인의 품질을 평가했는데 그중에서도 꼬르똥, 샤름 샹베르땡, 쥬브레 샹베르땡, 뉘생 조르주 등 빌라쥬급에서도 최고의 포도밭만 고른 덕택이다. 

 

그렇게 돈을 모으면서 양조 시설을 하나 둘 구입하고 포도밭을 조금씩 사 모으던 박 대표는 2001년 드디어 자신이 직접 양조한 첫 빈티지 와인을 세상에 선보였다. CFPPA에서 배운 포도 재배와 양조 기법을 그대로 적용하니 생각보다 빠르게 와인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2003년산 와인이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면서 대박을 터뜨린다.

 

아기 타다시 남매 가바야시 유코(오른쪽)와 가바야시 신

“신기했죠. 작가인 아기 타다시 남매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어요. 와인이 만화에 소개되고 1년 정도 지나 남매가 와이너리를 직접 찾아왔어요. 너무 의아해서 물어봤죠. 뫼르소 2003년산이 내게는 완벽한 와인이 아닌데 왜 이 와인을 선택했느냐고. ‘약간 모자라는 아름다움이 있고 그 속에서 우아한 느낌도 있어 와인을 골랐다’고 설명을 하더군요. 타다시 남매는 작품회의를 마치면 필요한 와인을 인터넷을 통해 대량 구매해 직접 테이스팅한 뒤 작품에 소개할 와인을 선택한다고 하네요”.

 

신의 물방울에 와인이 소개된 뒤 남편이 뫼르소 2003 전량 1200병을 일본에 팔려고 했는데 박 대표는 잠깐 기다려 보라며 한국 수입사에 전화했다. “뫼르소가 신의 물방울에 소개됐다고 얘기하자 더 이상 와인을 못팔겠다던 수입사 직원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더군요. 전량을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사정해 600병을 보냈는데 불과 한달만에 다 판매됐어요. 루 뒤몽의 다른 와인까지 불티나게 팔려 나갔죠. 지금도 신의 물방울 덕을 많이 보고 있어요. 너무 고마울 따름입니다”. 박 대표는 “신의 물방울이 우리의 엉덩이를 팍 쳐서 올려줬다”고 표현한다. 아기 타다시는 필명인데 남매중 누나인 가바야시 유코가 지난해 여름 두번째로 방문했고 올 11월에 다시 찾기로 했단다. 이제는 한때 신의 물방울 드라마 주인공으로 거론됐던 배용준 등 한국 연예인도 많이 찾는 인기 와이너리가 됐다. 

 

#하늘, 땅 그리고 사람이 빚는 와인

 

부르고뉴 와인은 흔히 떼루아(Terroir) 와인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포도가 재배되는 토양과 기후를 뜻한다. 부르고뉴 포도밭은 그랑크뤼(Grand Cru), 프리미에 크뤼(1er Cru)로 등급을 매긴 포도밭이 이미 정해져 있으며 더 이상 포도밭을 늘릴 수 없다. 그 아래 등급이 쥬브레 샹베르땡, 뉘생 조르주 등으로 불리는 꼬뮌(빌라쥬· 마을단위) 와인이다. 그외의 부르고뉴 전역에서 생산되는 포도를 섞어서 만드는 와인은 레지오날, 프랑스어로 헤지오날(regional)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부르고뉴 와인은 포도밭의 위치, 즉 토양과 미세기후에 따라 이미 어느 정도 품질이 결정돼 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와인메이커의 손길이 더해지는 것이다. 박 대표는 부부는 고심끝에 이런 부르고뉴의 떼루아를 동양적으로 가장 쉽게 전달하기 위해 하늘, 땅, 사람을 아우르는 천지인을 선택했다. 

 

로마네 꽁띠 포도밭 전경

박 대표는 사람이 절대 자연을 이길 수 없기에 내가 가진 땅과 기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자연이 준 포도에 겸허하게 인간의 손길을 더해 와인을 빚는다는 것이 그의 양조철학이다. 이는 오랫동안 포도밭을 일구며 알게된 깨달음 때문이다. “2016년 서리 피해를 한번 당했는데 머리속이 하얗게 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열매를 맺지않아 한 푼도 벌수 없게 된 거죠. 겨우 싹이 나서 40%는 건졌지만 이번에는 병충해 밀듀가 포도밭을 덮쳤어요. 그때 알았어요. 자연을 상대로 아무리 싸워도 내 몸만 상하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빨리 체념하고 내년에는 자연이 좋은 결과를 주겠지 하는 신념으로 살자고”.  박 대표의 뉘생조르주 포도밭은 2018년에도 우박이 두차례나 쏟아져 큰 피해를 봤다. 포도 알갱이가 모두 터져 버렸는데 2년 전 경험때문에 서리 피해보다는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한다. 자연 앞에서는 늘 겸손해지자는 것이 와인을 빚으면서 얻은 소중한 자산이다. 

 

부르고뉴의 포도밭

올해 포도를 수확하면 20번째 와인을 만들게 된다. 사람도 스무살이면 성년. 박 대표가 꾸는 앞으로의 20년은 어떤 꿈일까. “포도밭을 가꾸는 것은 매우 힘들어요. 하지만 이 포도는 이런 와인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와인을 만들 수 있어 내 포도밭에서 일군 포도로 직접 와인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포도밭을 조금씩 늘리는 게 목적이죠. 그런데 빌라쥬급의 새로 개간하는 땅 정도만 살 수 있어요. 이곳에서는 포도밭을 팔때 젊은 농부들에게 먼저 기회를 많이 주고 이웃한테 우선권을 준답니다. 우리는 가진 포도밭이 별로 없으니 이웃도 없어요. 그랑크뤼나 프리미에 크리 포도밭을 사기 어렵다는 얘기에요. 그래도 개간하는 땅이라도 사놓으면 내가 아니라도 자식이나 후대에게 기회를 줄수 있으니까 그 땅이라도 사야해요. 그랑크뤼는 이미 다 정해져 있고 개간하는 땅은 빌라쥬급으로 만들수 있답니다”. 

 

부르고뉴는 북쪽의 꼬뜨 드 뉘(cote de Nuits)와 남쪽의 꼬드 드본(Cote de Beaune)을 합쳐 꼬뜨 도르(Cote d'Or·황금의 언덕)로 불린다. 워낙 값비싼 와인들이 생산되는 곳이고 가을이면 포도밭의 단풍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꼬뜨도르가 시작되는 북쪽 첫번째 마을 마르사네(Marsannay)에서 새로 개간된 포도밭 0.5ha를 최근 구입해 포도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빌라쥬급에 포함되지 않는 헤지오날급도 무시하지 말란다. “제가 가진 포도밭은 다 합쳐도 겨우 2ha 정도에요. 하지만 헤지오날인 부르고뉴 후즈(Rouge)라도 포도나무 수령이 60∼70살 수령이라 빌라쥬급 못지 않답니다. 대신 양이 아주 적게 생산되죠. 이 와인인 바로 나만의 로마네 꽁띠랍니다”. 지하 셀러에서 ‘박 대표의 로마네 꽁띠’를 마셔본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로마네 꽁띠를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오랜 나무가 주는 깊은 복합미가 마음을 울린다.

 

박재화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루 뒤몽 로고가 새겨진 와인 잔

루 뒤몽 이름에는 박 대표 와인의 정체성이 담겨있다. 뒤몽은 프랑스에서 아주 흔한 성.루는 박 대표가 대모를 맡았었던 3살 여자 아이다. 그런데 루는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눈을 안 맞췄단다. 루처럼 아무한테나 눈길을 주지않는 좀 도도하면서도 섬세하고 엘레강스한 와인을 만들어 프랑스의 흔한 성처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들겠다는 뜻에서 이름을 루 뒤몽으로 지었다. 와인 잔 로고도 박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루 뒤몽의 알파벳 L 과 D를 활용해 와인 잔을 표현했는데 뭔가 아쉬우면서도 여백의 미를 잘 살렸다.

 

#생산자 울리는 한국의 통관 규정들

 

박 대표는 이 얘기를 꼭 써달라고 간청했다. 프랑스 생산자들은 정부 공인기관에서 성분분석을 받는데 황당하게도 한국에 새 와인이 들어갈때마다 이를 아예 인정하지 않아 병당 30만원씩 주고 성분분석을 다시 받아야 한단다. “새 와인이 6병이라면 성분분석을 받는데 180만원이나 들어요. 이는 고스란히 와인 값에 전가될 수 밖에 없어요. 같은 와인라도 이름만 바뀌면 성분분석을 다시 받아야해서 이름도 못 바꾼답니다”.

 

루 뒤몽은 일체의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 오가닉(Organic)과 비오다이나믹(Biodynamic)으로 만든다. 프랑스 정부의 인증도 받았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의 비오 인증마크도 한국에 들어갈 때는 무용지물이다. 인증 관련 서류를 새로 받아오라고 요구하는 등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들이대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 수입사들은 아예 비오 마크를 가리고 통관한다. “각국은 화학비료를 일체 안쓰고 와인의 산화를 방지하는 이산화황(SO2) 사용도 최소화하는 오가닉과 비오다이나믹 농법을 요즘 권장해요. 프랑스 정부에서 비오 인증 마크를 받은 와이너리는 날씨가 안좋아도 모든 농사를 의무적으로 비오로 해야한답니다. 그런데도 한국에 비오다이나믹 와인을 수출할때는 비오 인증기관을 통해 와인 수출 관련 인증서를 또 받아야 해요. 이런 서류를 요구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해요. 결국 한국 소비자들은 비오 와인인지 알 수가 없는 거죠. 한국 소비자들이 건강한 와인을 소비할 기회를 정부가 무슨 권리로 막고 있는 걸까요”.

 

#젊은이들이여, 기회를 두려워 말라

 

콧대 높기로 소문난 부르고뉴 생산자들속에서 동양인이, 그것도 역사가 짧은 와이너리가 수백년 역사를 지닌 생산자들과 경쟁하는 것은 쉽지않다.  텃세는 없을까. 박 대표는 와인 생산과 판매 과정 등에서는 겪는 텃세나 차별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때 주변의 생산자와 연구소 등에서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차별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느날 한국에서 열리는 와인 행사에 가는 길이었어요. 디종역에서 막 기차가 출발하려하는데 세관원이 나를 잡더군요. 가방에 알코올이나 담배가 있냐고 질문하기에 내가 와인이 한병있다고 하니 열어보라고 해요. 그래서 내가 지금 기차를 못 타면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친다고 했죠. 그랬더니 세관원이 기차에 올라가 기관사에게 말해 기차 출발을 미루고 다시 내려와서 내 가방을 다 뒤졌어요. 그러더니 별게 없다면서 가방을 닫고 그냥 가라하더군요. 정말 황당했죠. 제가 프랑스 아줌마였다면 아침 6시에 저를 검사했을까요. 국적을 바꿔도 얼굴이 바뀌지 않으면 어차피 외국인이죠.”  절대로 프랑스인에 될 수 없기에 부부는 국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미술 복원사의 꿈을 접은 선택에 미련은 없을까. “안하길 잘했죠. 지금은 미술품을 살 수 있잖아요. 하하. 고미술 복원은 현실적으로 정말 힘든일이에요. 미술뿐아니라 화학도 잘해야 하죠. 와인 스쿨은 과정도 1년 정도로 비교적 짧고 와인을 잘 만들겠다는 열정도 커서 빨리 자리잡을 수 있었어요. 절대 후회 안해요. 어렸을때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는데 이제는 남편과 애들도 있고 건강하게 일도 할 수 있으니까 매일매일이 행복하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한 한 마디도 남겼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도 저는 망설이지 않고 같은 선택을 할 거에요. 한국의 젊은이들도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오면 절대 망설이지 말고 일단 부딪히고 도전해 보세요. 그러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디종·본=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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