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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양산보와 소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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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4-03 22:48:08 수정 : 2020-04-03 22: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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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담양에 소재한 소쇄원을 소개한다. 담양에서는 조선시대 호남 선비들의 풍류와 멋이 담긴 정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지은 정원 소쇄원(瀟灑園·사진)이다.

양산보는 조광조의 문인으로서 스승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자 이곳에 정자를 짓고 은거의 삶을 살았던 곳이다. 소쇄원은 조선 최고의 민간 정원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면서 곳곳에 건물을 지어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매우 매력적이다. 소쇄원이라는 이름은 ‘맑고 깨끗하게 한다’는 뜻으로 양산보가 그 이름을 지었다. 혼탁한 정치 현실에서 벗어나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학문에 정진하고자 했던 양산보의 뜻을 담았다.

소쇄원은 1520년에 건립되기 시작하여 153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착공되었다. 1540년대에는 원림(園林)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소쇄원은 양산보 개인에게는 은둔처였지만, 당대 학자들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송순, 김인후, 임억령, 정철, 고경명 등 호남을 대표하는 사림들이 모여들어 시문을 주고받으며, 학문과 풍류를 즐겼다. 송순은 면앙정을 세운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소쇄원 조성에 도움을 주었으며, 소쇄원을 증축할 때는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인후는 소쇄원 완공을 기념하여, ‘소쇄원 48영’을 남겼으며, 정철은 ‘소쇄원제초정(瀟灑園題草亭)’을 남겼다. 소쇄원의 제월당(霽月堂) 현판과 담장에 새겨진 ‘소쇄처사양공지려’는 송시열의 글씨이다.

소쇄원은 다른 정자들에 비해 원형에 가장 가까운 정원으로 국문학, 건축학, 조경학, 역사학 등 여러 분야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큼 학문적 가치도 뛰어나다. 소쇄원에서 봄날의 향기에 마음껏 취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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