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세계가 글로벌 침체와 싸우기 위해 함께 모인 날이다.”(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공동선언문이 합의된 후 각국 정상들은 ‘역사적 합의’ ‘새로운 협력시대의 개막’이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각국 정상들은 예상과는 달리 글로벌 경제·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5조달러’(6600조원)의 경기부양 조치와 함께 총 ‘1조1000억달러’의 자금을 투입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합의했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경기 회복 기대감이 퍼져 급등세를 보였다. 2일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7978.08로 전날보다 216.48포인트(2.79%)나 뛰었고, 나스닥 종합지수도 51.03포인트(3.29%) 오른 1602.63으로 거래를 마쳤다. 유럽 증시 역시 대부분 4∼6% 폭등했고, 3일 아시아증시도 대부분 상승흐름을 보였다. 국제유가는 폭등세로 돌변, 2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전일보다 무려 4.25달러(8.8%)나 오른 배럴당 52.64달러에 마감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제 회복과 금융 안정을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가운데 G20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조체제도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숫자의 허와 실=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G20 선언문에 등장한 천문학적 숫자들이 각국 간 갈등을 은폐시키고 있다며 합의사항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무엇보다 사상 최대규모인 5조달러의 경기부양은 당초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주장했던 추가 재정지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돈은 단 한푼도 없다. 이 수치는 IMF가 G20의 2008∼2010년 정부차입 누적분을 2007년에 대비해 단순히 추정한 것이다. 독일 정부는 이번 선언문에서 추가 경기부양책을 명시하지 않은 점에 매우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1조1000억달러의 내역도 석연치 않다. IMF펀드 증액분 5000억달러 가운데 중국이 이번 회의에서 약속한 400억달러를 빼곤 새 돈을 찾기 힘들다. 일본이 작년 11월 1000억달러 출자를, 유럽연합은 지난달 750억유로(1010억달러) 출자를 이미 약속했다. IMF의 특별인출권 2500억달러도 IMF가 만든 ‘매직 머니’에 불과하다. 각국은 이 돈을 외환보유액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IMF 투표권에 비춰 볼 때 이 돈의 44%는 G7(선진 7개국)에 배정되고 800억달러 정도만이 중간 및 저소득 국가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게 FT의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정상들의 성명에는 경기부양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면서, 정상들이 대신 경제 회복에 필요한 지속적인 재정적 노력에 나설 것이란 모호한 실천만 약속했다고 전했다.
◆금융부실 처리는 쏙 빠져=이번 합의문에는 정작 금융위기의 핵심인 부실자산 처리 문제를 빠트리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FT는 공동선언문에서 전 세계 은행의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강제력 있는 대처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브라운 총리가 “G20 정상들이 처음으로 금융기관 부실자산 해소를 위한 공통된 접근법에 동의했다”고 강조했지만, 선언문에는 현재 2조2000억달러로 추정되는 부실자산 처리방안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주춘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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