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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東夷)는 우수한 종족 이름이자 동방의 미칭(美稱)”

입력 : 2010-12-20 15:20:51 수정 : 2010-12-20 15: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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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국 동이·발해국 역사문화연구원장 ‘대동이탐구(大東夷探究)’ 출간

 ◆대동이탐구(大東夷探究)-서병국 박사 고희기념 동이저서/서병국 지음/한국학술정보/3만2000원

 태고적부터 해가 가장 먼저 솟는 곳을 동방이라고 하였다. 특히 지나인(支那人·중국인)들은 동방이 해의 정기를 가장 먼저 많이 받는다고 하여 동방을 우러러 받들었으며 방향을 말할 때 먼저 동방을 내세웠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의 고전을 보면 지나인들은 지나의 동방을 생명의 근원으로 믿어 3방(서·남·북방)보다 해의 정기를 많이 받는 동방의 사람들이 가장 지혜롭고 우수하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동방의 문화가 우수하다는 정평이 일찍이 나왔다. 동방을 말하는 동이는 광활하여 이곳을 터전으로 하는 종족의 수는 적지 않았다.

 우리 민족 계열이 아닌 종족은 소수이며 내세울 만한 문화를 이루어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예의·도덕·음악 등 문화면에서 가장 우수하여 지나인의 찬사를 받았으며 우리 동이족의 문화는 보편적 가치를 지녀 지나인들도 공유함으로써 지나의 문화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같은 동이에 속하는 소수의 미개 종족을 제외하면 동이는 동방의 우수한 종족 이름이자 이들의 터전인 동방의 미칭(美稱)으로 일찍이 통용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선인들은 소중화의식(小中華意識)에만 몰입하여 동이의 참모습을 알아보려 하지 않아 동이의 올바른 의미를 알지 못하였다.

 우리 선인들이 소중화의식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공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심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의 선인들은 공자가 유교의 창시자라 해서 거의 무조건 그를 숭상하기만 하였다. 중화사관의 의미와 다름없는 중화의식을 처음 표방한 것은 주(周)나라였다. 주나라가 동이족의 은(殷)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갑자기 지나에는 지나족의 시대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동이족을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공자는 동이족이면서도 주나라가 지배하는 지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주나라에 협력하는 등 주나라의 비위를 맞추는 쪽으로 자신의 태도를 정하였다. 이에 따라 동방 또는 우수한 동이족을 뜻하는 동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가 갑자기 공자에 의해 ‘동쪽의 오랑개’로 둔갑하였다.

 공자가 지나에서 성인(聖人)으로 존경을 받다 보니 우리의 선인들은 공자가 동이의 의미를 비하시켰음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시종 지나인의 입장에서 공자를 숭배하기만 하였다. 공자가 지나에서 성인으로 존경을 받다 보니 그의 후학들은 공자가 말한 것을 비평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묵수적인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심지어 공자의 동이 비하 발언까지 맹종하였다.

 공자를 처음 성인으로 만들고 받든 것은 지나의 후학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남긴 대내용 동이 관련 문헌을 보면 동이에 대한 평가는 이중적이다. 동이를 우수한 민족으로 평가한 문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악의적으로 비난한 문헌도 있다. 전자는 동이를 동방의 우수한 민족이라고 진지하게 호평했음에 반해 후자는 동이를 미개한 야만인이라고 치졸하게 악평하였다. 우리의 선인들이 두 종류의 문헌을 모두 섭렵했다면 우리의 입장에서 공자에 대한 평가는 분명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지나의 문헌에서 동이에 대한 지나인의 평가가 이중적이었음을 처음 밝혀냈으며 우리의 선인들은 지나인의 악의적인 비난을 비판하지 않고 묵수하는 태도를 견지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이족의 우수한 면모와 동이족에 대한 지나인의 호평이 진정 있었음을 처음 찾아냈다. 10여 년의 연구를 통해 저자는 또한 동이족의 우수한 문화가 지나인의 문화 형성에 토대가 되었음을 문헌을 통해 발견하였다. 이 책은 지금까지 동이족에 대한 왜곡된 내용을 처음 구체적으로 바로 잡았다는 데서 누구나 반드시 일독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저자 서병국(徐炳國)은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와 동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고 관동대학교 교수를 거쳐 대진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동이·발해국 역사문화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사를 폭넓게 공부하기 위해 북방사를 전공하였으며 ‘요의 한족통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 관동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초기 발해와 신라의 동해안 국경선이 니하(泥河·강릉 연곡천)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는데 이때부터 발해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동이탐구’를 준비한 기간은 10여 년이다.

 저자는 태어난 명륜동에서 지금도 거주하고 있으며 종로 토박이로 인정을 받아 2009년 서울 토박이말 대회에서 으뜸상을 받았으며, 2010년 서울 토박이말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심사에 참가하였다. 저자의 저서와 논문은 중국에도 알려져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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