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공공기관의 감사보고서에 드러난 내용의 일부다. 공기업 등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기강 해이와 도덕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비리는 만연하고 조직의 운영 및 관리는 엉터리로 이뤄지고 있다. 무더기로 범죄를 저질렀다가 적발된 사례도 적지 않다. 이들 앞에 공금은 그저 ‘눈먼 돈’이다. 국민의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규모가 큰 공기업은 하청기업이 많다 보니 돈을 받고 특정 기업의 부품을 쓰다 적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원자력발전소 등 중요 시설을 관리하는 공기업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 만일 사고로 이어진다면 큰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지난해 부품납품 비리로 직원 44명이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2008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비리가 이뤄졌다. 이들은 부풀려진 납품가격을 묵인하거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납품업체로부터 5년간 22억원을 받았다. 검찰에 기소된 31명을 포함해 모두 36명이 해임됐고, 정직 3명·감봉 3명·견책 2명 등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한국공항공사 직원 2명은 보안장비 납품업자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은 사실이 감사에서 적발됐으나 솜방망이(경고) 처벌을 받았다.
‘브로커형’ 범죄도 자행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조사 담당자는 “보건복지부의 현지조사를 무마하려면 복지부 조사팀 등에게 사례를 해야 한다”며 A병원 행정원장으로부터 2011년 7월과 8월 두 차례 걸쳐 3300만원을 받았다. 이 담당자는 유통회사가 병원에 식자재를 납품할 수 있도록 돈을 받고 주선하기도 했다. 한 공사는 “직원이 업무와 관련해 돈을 받는다”는 제보를 받고 감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파주고양지사 직원이 ‘사용전검사’ 업무를 하면서 관련자들로부터 2010∼2012년 10여 차례에 걸쳐 50만원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언제 깨끗해지나 … 공기업 한 곳당 100여명의 임직원이 비리로 적발되는 등 공공기관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 중인 공공기관 개혁에 성공하려면 고질적인 비리 문제를 해결해야만 가능하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공기업 직원들이 회사로 들어가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회사의 공금을 자기 돈인 것처럼 쓰다 적발된 경우도 많다. 인천종합에너지 간부는 회사 돈(55만원)으로 차량을 수리하다 덜미가 잡혔다. 한국무역보험공사 직원은 지방자치단체 지원 보험료를 유용했다가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았다.
법인카드의 개인적 사용도 여전했다. 공무원연금공단 제주지부 한 직원은 법인카드로 672만원을 썼다가 해임됐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단의 한 부서에서는 업무용이 아닌 사적 용도로 185만원을 법인카드로 사용하기도 했다.
안이한 일처리로 예산을 헛되이 쓰이게 하는 사례도 다반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사망·자격정지·말소된 7만여가구에 독촉고지서가 발송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도 압류예정통보 등 안내문 8만5000여건을 발송해 8503만원의 예산을 낭비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장애연금 1억4422만원을 잘못 지급했다. 한국도로공사 직원 2명은 주택마련자금 2000만원을 지원받은 뒤 사택 임차금 9000만원을 중복으로 지원받아 감봉 조치됐다.
공기업 직원들이 ‘도둑질’도 서슴지 않았다. 한수원은 지난해 11월 직원 2명이 업자 2명과 짜고 원전 자재인 전자회로기판을 빼돌린 사실을 적발했다. 한수원은 관련자들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고, 직원 2명은 지난 1월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보령화력발전소 직원은 폐케이블을 무단반출했다가 감사에서 적발됐다. 해당 직원은 정직 6개월, 책임자들은 견책(1명)과 경고(2명) 처분을 받았다.
10대 가출 청소년들에게 있을 법한 일도 일어났다. 한국중부발전은 보령화력발전소에 대한 감사에서 인턴사원들이 혼숙·음주한 사실을 적발해 3명은 감봉, 8명은 경고 또는 주의조치했다. 고리원자력발전소 소방대원 2명은 지난해 9월 마약을 투약했다가 감사에 적발돼 해임됐다. 한국전력거래소의 처장과 대리는 서로 주먹다짐을 하다가 견책을 받았다.
◆단골메뉴… 음주운전, 뺑소니
한 공사 직원은 만취 상태(혈중알코올농도 0.194%)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중앙선을 넘어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이 직원은 2006년 1월과 2004년 9월에도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 취소와 벌금을 낼 정도로 음주운전이 상습적이었다. 교통안전에 모범을 보여야 할 교통안전공단 직원 3명은 술을 마시고 업무용 차량을 몰다 교통사고를 내 벌금 7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뺑소니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감사에서는 지사에 근무하는 직원이 전남 여수에서 자산의 승용차를 운전하다 중앙선을 넘어 시내버스를 들이받고 달아났다. 이 사고로 버스승객이 부상을 입었다. 한 공사 직원은 작년 6월25일 졸음운전을 하다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을 충돌한 뒤 도주했다.
이귀전·정진수, 세종=박찬준 기자 sky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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