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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인정이 살아있어… 그래서 힘들어도 행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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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5-07 20:17:59 수정 : 2013-11-21 11: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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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지막 산동네 백사마을 ‘폐지 할머니’의 하루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에서 만난 신윤영(71) 할머니는 이른 새벽 낡은 손수레를 끌고 길을 나선다. 아직은 차가운 새벽 공기가 할머니의 옷깃을 파고든다.

환한 웃음 신윤영 할머니가 예전 옆집에 살던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앞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고물상에서 빌린 손수레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한쪽 바퀴가 납작 찌그러져 끌고 다니는 데 힘이 갑절로 들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할머니는 배시시 웃는다. 이른 아침 공공근로로 주민센터 청소를 마친 할머니가 서울 중계동 영신여고 주변 주택가를 돌며 폐지를 모은다. 할머니의 손수레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지면 단골(?)집 주민들이 하나 둘 모아둔 신문지와 종이상자 등을 내어준다.

폐지 선별 신윤영 할머니가 재활용품 집하장에 가기 전 손수레에 실린 것들을 도로에 쏟아놓고 빈병과 파지 등을 선별하고 있다.
언덕길 오르고… 신윤영 할머니가 노원구 영신여고 인근 비탈길을 고장 난 손수레를 밀며 힘겹게 오르고 있다.
펑크난 바퀴 신윤영 할머니가 자전거 대여소에서 손수레 바퀴에 바람을 넣어보지만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바퀴는 바람마저 들어가지 않는다.
요즘 온정이 메마른 세상이라지만 할머니는 아직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며 골목에서 마주친 주민들에게 연신 감사인사를 건넨다. 공원 귀퉁이에 앉아 작은 빵 하나로 늦은 점심식사를 대신한다. 할머니가 잠시 숨을 돌리는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할머니의 다 떨어진 운동화 한쪽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다.

관절염으로 뒤틀린 발가락이 아파 오른쪽 신발의 앞부분을 잘라냈다고 한다. 남에게 손 벌리는 게 부끄럽지 이런 행색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며 할머니는 벗어둔 신발을 고쳐 신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구멍난 운동화의 사연 관절염으로 발가락이 뒤틀려 신발을 신을 수 없어 일부러 신발 옆 부분을 튼 할머니. 하루 12시간 이상을 걸어 다니지만 아직은 걸을 수 있어서 행복하단다.
재활용품 가득 싣고… 신윤영 할머니가 손수레에 파지와 빈병, 캔 등 재활용품을 가득 싣고 백사마을 입구 재활용품 집하장으로 향하고 있다.
해질 무렵 고물상에 도착한 할머니가 수집한 폐지를 정리하며 바쁘게 손을 놀린다. 집에서 할머니 오기만 기다리는 거동 불편한 할아버지의 저녁식사를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고물상에 폐지를 넘기고 받은 돈은 만원 남짓. 그마저도 파지값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 할머니의 수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할머니가 빈 수레를 끌고 백사마을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깜깜한 좁은 골목길 끝자락 할머니의 단칸방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반갑게 맞는다.

할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일을 마친 신윤영 할머니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중계본동 백사마을 비탈길을 오르고 있다. 문득 봐도 뒤에 보이는 고층 아파트보다 훨씬 높은 할머니의 집. 귀 먹은 할아버지가 기다리는 집을 향해 할머니는 매일 이 길을 오른다. 몇 번이고 쉬었다가 오르고 또 오른다.
노부부는 마주 앉아 늦은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할머니의 전세 500만원짜리 단칸방도 재개발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할머니의 마지막 소망은 그저 할아버지와 둘이 여생을 보낼 방 한 칸이 전부라고 했다.

그래도 아직은 돌아올 집이 있어 다행이라며 할머니가 환하게 웃는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드러난 두 대 남은 윗니가 달빛에 반짝인다.

사진·글 이재문 기자 m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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