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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정치 공방 외면당해…실생활 파고드는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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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09 21:18:00 수정 : 2015-03-10 15: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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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권력투쟁 보다 ‘국민 눈높이’ 정치로 방향 전환
#1. 이민생(가명·27)씨는 지난 설 연휴 고향집에 내려가 변화를 실감했다. 앞선 추석 때는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여야 정쟁이 화제에 올랐으나 설 명절에는 ‘저가담배’ 얘기가 주를 이뤘다. 이씨는 “담뱃값 인상으로 예민해 있던 어르신들이 설 연휴 직전 제기된 저가담배 논란에 불만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2.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20∼50대 주부들과 만나 ‘집값’을 주제로 티타임을 가졌다. 불광동에 사는 6살 아이 엄마 박수영씨는 “주거 비용 때문에 아이 하나만 낳았다”며 “결혼 5년차에 두 번 이사했고 9월에 전셋값이 오르면 또 이사 가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문 대표는 “공공임대주택 12만호 건설, 공공 원룸텔 건설 등으로 공급을 늘려 주거난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치가 생활현장으로 떠밀리고 있다. 신년 정국을 뜨겁게 달군 연말정산, 보육대란, 담뱃값, 주택난 등은 모두 생활과 관련된 이슈였다. 이념, 지역감정 등 과거의 정치 소재는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한다. 국민이 생활과 무관한 공방을 외면하거나, 관심을 덜 갖기 때문이다. 생활정치가 자라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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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왜 정쟁에 등을 돌리나

생활정치 운동에 앞장서온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채진원 교수는 9일 “저성장, 고령화, 장기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한국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힘들수록 국민이 정쟁에 등을 돌리는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 교수는 “산업화 시기 정치권은 주로 민주주의·자유 등의 가치에 천착해왔지만 민주화를 이룬 지금 국민은 생활상의 문제에 주목한다”고 설명했다. 생활로부터 멀어진 정치는 민심으로부터 외면받고 선거 이변의 희생양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30 순천·곡성 보선에선 전통적 야권 강세를 뒤엎고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당선됐다. 야당 후보의 실책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지역 주민과 거리를 좁힌 이 후보의 노력과 의대유치·예산폭탄 등 ‘친생활공약’에 끌렸다는 유권자가 많았다.

생활정치의 개념 자체가 정쟁에 대한 대립항으로 자리매김한다. 권력투쟁이나 이념논쟁에서 탈피해 시민 생활에 눈높이를 맞추는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6·8 혁명 이후 정치적 목표가 거대 권력구조를 바꾸려는 것에서 개인의 삶 존중, 다양한 지적 욕망 등 미시적 욕구로 옮겨간 것에서 생활정치의 기원을 찾는다.

새누리당 손톱밑가시뽑기위원회(위원장 안종범 의원·왼쪽 세번째)가 지난해 2월 국회 귀빈식당에서 토론회를 하고 있다.
◆민심에 놀란 정치권…생활현장 찾다


우리나라 생활정치는 2000년대 초반 진보정당의 생활운동에서 시작됐다. 1999년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조직된 ‘경제민주화운동본부’는 주택·상가임대차보호운동, 서민금융생활보호운동, 부실기업 경영감시운동을 통해 생활 현장을 누볐다. 당시 진보적으로 꼽힌 정책들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흐름을 타고 제도권 정치에 받아들여졌다.

이 같은 변화에는 정치권의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지난해 ‘구원투수’로 민주정책연구원에 합류한 경제학자 우석훈 부원장은 “당 지지율이 15%까지 떨어져 스스로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얘기는 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생겼다. 절박감 때문인지 조언을 해도 과거보다 잘 먹힌다”고 전했다.

생활정치 운동이 기성 정당에 자리 잡은 것은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을지로위는 2013년 5월 발족돼 노사분쟁 현장에 직접 개입하며 성과를 냈다. 지난달 을지로위는 당내 상설 기구로 격상됐고 중앙당뿐 아니라 지방당에도 조직을 갖췄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위원장 우원식 의원·오른쪽)가 지난 3일 연세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 농성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을지로위원회 제공
보수진영도 영향을 받았다. 새누리당 ‘손가위(손톱밑가시뽑기위원회)’는 중소기업이 직면하는 비현실적 규정이나 제도 미비를 현장에서 직접 듣고 입법으로 연결시키자며 2013년 6월 발족했다. 하지만 초대 위원장인 안종범 의원이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가면서 손가위 활동은 흐지부지됐다. 직접 생활현장을 찾지는 않지만, 경제민주화 정책을 논의하는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소장파 유승민 원내대표 취임으로 약 4개월 만에 활동을 재개했다.

새정치연합에선 아직 논의 단계에 불과하지만 ‘생활정치센터’(가칭) 등 실천론도 다양하다. 지난해 새정치연합이 개최한 ‘민생정치,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선 시도당·현역의원 사무실에 생활정치센터를 두자는 제안이 나왔다. 을지로위가 노사관계 민원 등에 활동을 한정했다면 생활정치센터는 생활상의 문제 전 범위로 영역이 확대된다. 

◆모호한 개념…포퓰리즘 우려도


생활정치는 그 자체로 명확한 규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한계를 지닌다.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이준한 교수는 “생활정치라는 말은 동어 반복”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생활을 책임지는 게 원래 정치인데, 한국에선 정치가 민주화, 세대·정권교체 등에 초점을 맞춰 불가피하게 생겨난 개념일 뿐”이라는 것이다. 포퓰리즘도 생활정치가 빠지기 쉬운 덫이다. 생활현장이 정국 전환용, 대선주자 관심 끌기 등으로 반짝 이용되다보니 지속적으로 생활정치가 발전하기 어렵다.

채 교수는 “제도권 정치의 숙고된 조정 작용이 없으면 생활정치는 포퓰리즘으로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생활정치 영역에서 제도권 정치와 시민운동을 가르는 것은 이 지점이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현장과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개방적 소통과 숙고된 조정 작용을 통해 실현 가능한 입법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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