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 비평가 3인 ‘문학동네’ 가을호에 고언 “‘우국’의 안타까움은 관능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감정이지만 ‘전설’의 안타까움은 이 부부가 행복의 순간으로부터 굴러떨어져 앞으로 겪게 될 이별과 상실의 슬픔에 대한 예감이 된다. ‘우국’과 ‘전설’이 서로 다른 주제를 갖고 있고 서로 다른 감정들을 다루기 때문에 그것이 이 유사한 구절들조차 미묘하게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저 명백하게 유사한 인용문들에 독자들이 분노하고 항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이 명백한 차이에 대해 고려하지 않거나 말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출간된 ‘문학동네’ 가을호는 편집위원 권희철의 대표집필을 통해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전설’은 ‘우국’의 표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까칠하면서도 짜증스럽게’(김남일 ‘실천문학’ 대표 페이스북) 위와 같이 토를 달았다. 문제는 10여년 전 ‘전설’에 대한 표절 시비가 일었을 때 ‘저 명백하게 유사한 인용문들’에 대해 ‘고려하지 않거나 말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는 점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문예지에 중진 비평가 3인이 신경숙 표절사태 즈음하여 기고한 비평의 역할에 대한 글들이 눈길을 끈다. 최원식(인하대 명예교수)은 “제3의 비평공간에서 신경숙과 정문순의 교차검증을 통해 신경숙의 그 작품이 표절인지 아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해 최종판단이 내려지고 그 판단에 대한 공유가 문단 전체로 이동했다면, 아마도 그동안의 비의도적 봉쇄에 따른 대폭발은 자제되었을 것”이라고 ‘우리시대 비평의 몫?’에 썼다. 그는 “평론가가 작가의 눈치를 슬슬 살피며 책 읽은 자랑이나 늘어놓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요령부득의 글쓰기를 능사로 삼는다면 이 또한 자소(自小)”라면서 “오로지 독자로서의 책임과 긍지를 지니고 작가와의 협상에 당당히, 그러나 겸허히 임하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평론가 도정일(경희대 명예교수)은 “우리 비평은 ‘천사의 설득’과 악마의 설득’이 있다”면서 “타당성도 설득력도 없어 보이는 순수한 악의가 비평 행위를 지배하는 것이 ‘악마의 설득’이라면 ‘순진무구한 선의만 지배하는 것은 바보 천사의 선”이라고 질타했다.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역임한 김병익 평론가는 “소설 창작자보다 비평가가 예술원 회원으로 더 많이 선출되었다는 것은 비평가인 나 스스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면서 “일반 독자에게까지 번진 이른바 ‘문학권력’이란 말은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지만 귀담아듣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