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부진으로 위기에 몰린 팀
리그 3위·FA컵 우승 이끌어
2002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끌며 4강 신화를 쓴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69·사진) 감독에게는 ‘마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특유의 카리스마를 앞세워 절묘한 용병술로 선수단을 장악하는 히딩크는 늘 깜짝 놀랄 만한 성적을 거뒀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위,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호주를 16강에 끌어올렸다. 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러시아를 유로2008 4강에 깜짝 진출시켰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명예 서울시민이 된 히딩크 감독은 장애 아동과 저소득 어린이를 위한 복지사업으로 국내에 10개가 넘는 ‘히딩크 드림필드’를 만들었으며, 매년 한두 차례씩 한국을 방문하는 등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축구 감독직을 수행하느라 해외생활이 유난히 많은 히딩크 감독에게 한국은 제2의 고향이다.
고국인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지난 6월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던 히딩크 감독이 20일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부자구단’ 첼시의 부름을 다시 받았다. 성적 부진에 선수단과 불화까지 겹친 ‘스페셜 원’ 조제 무리뉴(52) 감독을 해임한 지 하루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첼시 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히딩크 감독에게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지휘봉을 맡기게 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무리뉴 감독이 물러나면서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바이에른 뮌헨(독일)을 이끄는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 리버풀(잉글랜드)을 이끌었던 브랜던 로저스 감독 등이 후임으로 물망에 올랐지만 히딩크가 전격적으로 사령탑을 맡은 것은 예상밖이었다. 러시아의 석유재벌인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2009년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히딩크에게 지휘봉을 맡긴 것이다.
첼시는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렸다. 성적이 부진할 경우 감독은 여지없이 파리목숨이었다. 하지만 히딩크는 2008∼09시즌 첼시의 임시사령탑을 맡아 리그 3위로 이끄는 등 16승5무1패의 빼어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FA컵 우승컵까지 첼시에 안겨준 뒤 계약기간을 마친 뒤 여지없이 첼시를 떠났다. 첼시에서 근래에 계약기간을 마친 유일한 사령탑이 히딩크였다.
‘꿈 같은 추억’을 기억한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다시 한번 ‘히딩크 마법’을 선택했고, 히딩크는 2009년 5월 첼시를 떠난 지 6년7개월 만에 복귀하게 됐다. 히딩크는 “첼시로 복귀하는 것이 흥분된다. 이번 시즌에 우리는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히딩크 감독과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함께 관중석에서 지켜본 20일 17라운드 경기에서 첼시는 선덜랜드를 3-1로 꺾고 약 한달 만에 승리를 맛봤다.
박병헌 선임기자 bonanza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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