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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주부 눈높이로 ‘살림 혁명’… “다시 태어나도 창업의 길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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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12 20:30:27 수정 : 2016-08-12 20: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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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의 역사’ 바꾼 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대표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는 안정된 공무원, 그것도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무관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을 택한 여성기업인이 있다.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52) 대표다.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공시족 청년이 25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5월 기준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준비생은 65만2000명으로, 이 중 39.4%인 25만7000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시족’인 시대에 살고 있다. 도전정신으로 미래를 개척해야 할 청년들이 공무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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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를 11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회사에서 만났다. 그의 다이나믹한 인생역정이 한여름 폭염보다 더 푹푹 찌는 청년실업이 확산되는 세상에 한 줄기 소나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인터뷰를 했다.

한 대표 사무실은 단출했다. 책상과 회의용 탁자, 두어 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전부였다. 특이하게 벽에 붙어 있는 세계사 연표가 눈에 들어왔다.

한 대표는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연표를 붙여놨어요. 과거로부터 배울 게 많잖아요. 제가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나 잘못된 점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세계 주방의 역사를 쓰자는 회사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연표를 보며 마음을 고쳐 잡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다시 태어나도 창업을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창업 초기 너무 고생을 했지만 다시 도전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 대표는 사업여건이 많이 달라져 제조업이 아니더라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언제든지 창업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애플리케이션 하나 잘 만들어 성공하는 스타트업이 속속 생겨나는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그는 대기업이 거액을 주고 뛰어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터져 나오면 아마 엄마들이 나서서 자식에게 창업을 권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핵심 기술자만 쏙 빼오는 것이 아니라 제값을 주고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업 환경이 정착돼야 한다고 했다. 또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면 중소기업 영역까지 침범한다거나 신생기업을 죽인다고 비난하는 잘못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창업에 나섰다가 실패할 경우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는 암울한 현실은 창업의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1세대 여성 벤처기업인인 그는 대학 시절 학교 앞 가게마다 손님 숫자와 매출, 회전율 등을 계산해 임대료 마지노선을 산출하고 폐업과 성업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을 즐겼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해 불문과에 입학했다. 여고시절에는 문학소녀라고 불릴 정도로 책읽기에 푹 빠졌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책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점포별 특성을 파악해 개선점을 마련하는 등 사업가 기질을 드러냈다. 그는 여느 졸업생과 마찬가지로 취업을 택했다. 창업까지는 꽤 먼길을 돌았다.

한경희 대표는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의 ‘주목해야 하는 여성기업인 50인’에 선정될 정도로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취업난으로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시대지만 그는 사무관 자리를 미련없이 버리고 창업을 택했다.
이제원 기자
그는 대학 4학년 때인 198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취업할 정도로 공부에 매진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은 해외취업, 그것도 국제기구 취업에 성공했지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단순히 영어와 불어를 잘 한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주특기가 없이 언어만 능통하다는 것은 효용가치가 별로 없었다.

그에게 맡겨진 것은 사무국의 단순한 비서실 업무였다. 외부활동을 지원한 그에게 비서직은 성에 차지 않았다. 3년 동안 근무한 후 그는 IOC를 과감히 그만둔 뒤 더 멋진 미래를 기약하며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MBA에 등록했다. 이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부동산 중개업무와 당시 처음 등장한 저가 생활용품 매장의 대명사인 ‘1달러 숍’ 등에서 일하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다른 영업사원보다 2∼3배 높은 실적을 달성할 정도로 치열하게 일했다.

능력으로 평가받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때쯤 한국인 도매상을 위해 물건을 빼준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남다른 열정으로 뛰어난 성과를 냈지만 부당한 오해로 인한 서러움과 슬럼프에 빠져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할 때 한국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귀국을 종용받았다. 적지 않은 나이의 딸이 외국에서 고생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교사 출신의 아버지는 귀국해 당시 교육부 공무원에 응시하라고 권유했다.

귀국과 동시에 결혼한 그는 공무원시험 공부에 돌입했다. 1998년 교육행정사무관 고시에 합격한 그는 순탄한 공무원의 길을 걸었다. 이듬해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를 위해 잠시 휴직했을 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무릎을 꿇고 걸레청소를 하는데 힘은 힘대로 들고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너무 힘들어 대걸레를 이용해 청소를 했지만 물만 묻혔지 되레 더 지저분해지더라구요. 그때 대걸레에 스팀이 나오도록 한 뒤 서서 청소를 하면 편리하고 청소도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김이 막 나는 뜨거운 물로 욕조 청소를 하면 찬물보다 깨끗하게 되는 것이 떠오른 거죠. 무릎을 탁 쳤어요. 대학시절 느꼈던 사업가 기질이 그때 다시 나타난 거죠.”

당시 뜨거운 스팀이 나오는 슈슈다리미가 영감을 줬다. 슈슈다리미에 길다란 막대만 달면 스팀이 나오는 대걸레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주변 엔지니어에게 물어본 결과 사업비 5000만원에 6개월 정도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길로 그는 사표를 내고 집을 담보로 1억원을 대출받아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스팀청소기 개발은 생각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5000만원을 다 쏟아붓고 6개월이 흘렀지만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

실패를 맛본 그는 직접 엔지니어를 찾아다니며 기술 개발에 나섰다. 여자를 상대하지 않던 엔지니어들의 직업환경 때문에 셀 수 없을 정도의 문전박대와 서러움을 당했다. ‘바지사장’과 ‘걸어다니는 민폐’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정부지원사업을 신청했더니 평가자들이 “남편이 무슨 사업을 하길래 당신이 나와서 바지사장처럼 이런 걸 하려고 하느냐”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창업 3년 만인 2001년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대걸레질하듯 똑바로 서서 청소할 수 있는 스팀청소기를 만든 것이다.

제품만 개발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제품 개발보다 판매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대형마트에 입점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제품설명을 하면 돌아오는 것은 “진공청소기가 있는데 스팀청소기가 팔리겠어요” 하는 힘 빠지는 대답이었다.

“청소가 쓸고 닦아야 하잖아요. 진공청소기는 쓰는 것이고 스팀청소기는 닦는 기능을 한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처럼 진척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온라인과 홈쇼핑을 통해 판매되면서 매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입소문까지 더해지면서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스팀청소기가 광풍을 일으키자 2005년쯤 국내 대기업은 물론 해외 업체에서도 유사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제품을 어떻게 차별화시키고 널리 알릴까 고민하다가 회사명에 ‘한경희’라는 이름 석 자를 넣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제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한 소비자로부터 스팀청소기 때문에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엄마가 이제는 구부리지 않고 청소를 할 수 있어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을 때 정말 창업한 것에 대해 보람을 느꼈어요. 어떤 분은 저를 입식부엌 이후 남녀 평등에 가장 기여한 여자라고 평가를 했어요. 서서 걸레질을 할 수 있으니까 남자가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요.”

그는 주부들이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공략했다. 여성과 주부의 눈높이에서 제품을 개발했기 때문에 여성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는 가전제품뿐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솔루션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경희생활과학이 빈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개발하는 회사로 성장하도록 선두에서 이끄는 것이 그의 목표다.

“신제품을 개발하다가 기술적인 문제에 막히면 제가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엉뚱한 말 한마디가 해결책이 되더라고요. 연구원은 본인들이 아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과출신인 저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문제해결에 나서고 있는 거죠.”

스팀청소기로 성공신화를 쓴 그는 가위칼이라는 제품을 최근 출시했다. 가위칼은 도마 없이 요리가 가능한 신개념 조리 도구이다. 사용할 때마다 칼자국이 생기는 도마는 위생적이지 못해 수시로 소독을 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김치를 도마에 놓고 자르면 도마에 김치국물이 뒤덮여 일손이 이중으로 들어갔다. 가위칼은 음식재료를 그냥 뚝뚝 잘라서 넣으면 된다. 위생적이고 조리시간을 줄일 수 있어 주부는 물론 혼자 사는 남성들로부터 인기다.

이 제품은 딱딱한 것은 물론 두부 같은 부드러운 것도 칼로 썰듯이 자를 수 있는 발명품이다. 전 세계 주방의 역사를 바꿔 놓을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신제품이다. 스팀청소기와 스팀다리미 등 여성들의 불편을 해결한 창조혁신의 아이콘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잇는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한 대표는 기업 이사회에 여성의 진출을 확대하는 활동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9월 1일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한국지부 창립총회 준비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 이사회에 여성 참여율이 30%인 기업의 실적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어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꼼꼼함으로 실질적인 이사역할을 수행한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기업의 중장기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전략적인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 여성 참여율을 높이는 것이 한 대표의 새로운 사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나라에는 WCD가 창립됐는데 아직 우리나라에만 없다. WCD 창립총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각 기업의 이사회에 여성들을 많이 진출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사회에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성들을 교육시키고 데이터베이스화할 계획이다. 여성의 이사회 참여가 많아지면 기업의 투명성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는 것이 한 대표의 지론이다.

그는 “우선 공기업 이사회의 30%를 여성에게 할당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며 “이런 계획을 포함해 앞으로 2년 동안 기업 이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성 경제인을 배출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 한경희는…?


△1964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불문학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1998년 교육인적자원부 교육행정 사무관 △1999년 한영전기 설립 △2001년 국내 최초 스팀청소기부문 발명 특허 △2005년 한경희생활과학으로 사명 변경·대표이사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대통령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 △기획재정부 정책성과평가위원회 평가위원 △서울시장학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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