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모(30)씨는 올해 하반기 공기업 취업을 사실상 포기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진행되면서 서류전형을 뚫을 방법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다. 오씨의 강점은 이른바 주요대 졸업에 높은 어학 점수. 하지만 문과 출신이어서 자격증이 없고 차별화할 만한 스펙도 마련해두지 못했다. 블라인드 채용을 내세우는 사기업들이 ‘전문성을 입증하는 자료’까지 요구해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블라인드 채용’이 올해 하반기 취업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채용 과정에서 작용한 불합리한 차별을 배제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일각에선 청탁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준생들의 불안감이 무분별한 스펙 쌓기 등으로 이어질 조짐도 엿보인다.
공기업에 이어 블라인드 채용을 채택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달 초 신용보증기금이 5급 신입 직원 108명을 뽑으면서 학력 등의 항목을 삭제하도록 했고 서울주택도시공사 등도 블라인드 채용을 적용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의 29.7%가 면접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겠다고 밝혀 민간기업으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이 부정 청탁에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 ‘공공기관 채용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고’에서 “공공기관이 적합한 인력을 선발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면 블라인드 채용이 사적 관계에 의존하거나 청탁 같은 부정에 노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취준생들이 차별화를 위해 ‘특별한 스펙’ 쌓기에 나서고 이 같은 수요에 대응한 고가의 사교육 시장도 꿈틀댈 조짐이다. 한 공기업의 인사담당자는 “블라인드 채용의 중요한 기준은 직무에 대한 관심, 자질인 만큼 이런 부분에 집중해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