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를 올해 상반기까지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설 연휴를 앞두고 24조1000억원이 투입되는 예타 면제 대상 23개 사업을 발표하면서다. 예타 면제 사업을 선정할 수밖에 없는 근거 중 하나가 현행 예타 제도의 한계에 따른 것이었던 만큼 상반기 중 예타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23개 사업의 경우 현행 예타 제도로는 사업 타당성을 얻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 재정이 대거 투입되는 사업의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된 예타 제도를 무력화했다는 비판을 받은 이유다.
7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현행 예타 제도의 문제점으로 크게 3가지를 꼽는다. 우선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재정 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인 신규사업’이라는 대상 요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이다. 제도가 도입된 1999년에 비해 경제 규모가 커진 것 등을 감안하면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되더라도 조사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문제도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예타 평균 기간은 15개월로, 1년 넘게 걸리다 보니 지자체가 원하는 사업을 적기에 추진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타 평가 방식을 놓고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예타 평가는 경제성(40∼50%), 정책성(25∼35%), 지역균형발전 분석(25∼30%)으로 이뤄지는데 경제성 분석 비중이 높다 보니 지방과 낙후 지역 등은 통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인구가 적고 공공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의 경우 경제성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으면서 지역은 낙후되고 인구 유출이 지속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예타 대상 요건을 총사업비 1000억원 이상, 국가재정 지원 규모 500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대상 요건을 완화하면 규모가 작은 사업의 경우 예타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예타 조사 기간 단축도 추진된다. 현재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에서 수행하는 예타를 다른 기관에서 공동 수행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평가 방식은 경제성 분석 비중을 낮추는 대신 정책·지역균형발전 분석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KDI 공공투자관리센터에 따르면 예타 제도가 도입된 1999년부터 2017년 말까지 예타 사업 690건의 경제적 타당성 확보율 비율은 약 47.4%에 불과했다. 종합적 타당성을 확보한 사업은 437건(63.3%)이었고, 예타를 통해 141조원의 예산이 절감됐다.
전문가들은 예타 제도 전면 개편이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정부의 예타 면제 발표는 타당성이 없는 사업에 대해 타당성 조사를 면제한 것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시장형 공기업의 경우, 민간 기업만큼 면밀하게 추진하는 사업들이 있는데 예타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원칙적으로는 예타를 진행하되, 경제성과 공공성·정책적 평가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뤄지도록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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