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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스탈린도 한때는 노벨평화상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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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18 06:10:00 수정 : 2019-02-17 16: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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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이모저모] 역대 美대통령 중 수상자 4명뿐… 트럼프 수상 여부 '관심' / 獨총통 히틀러, 蘇독재자 스탈린도 추천됐으나 수상 실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의해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다 보니 그 대통령은 당연히 노벨평화상 수상과 아주 근접한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사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4명뿐이고 그나마 임기 도중에 받은 이는 3명에 불과하다. 과거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인사들 중에는 상을 받기에 충분한 인물도 있으나 ‘어떻게 이런 사람이 추천을 받았지’ 싶은 사람도 더러 눈에 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총리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차대전 영웅' 루스벨트·아이젠하워 수상 못해

17일 노벨재단에 따르면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 중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2009년), 지미 카터(2002년), 우드로 윌슨(1919년), 시어도어 루스벨트(1906년) 4명이다. 이 가운데 카터는 퇴임 후 무려 20년이 지나 민간인 신분으로 수상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 왼쪽부터 버락 오바마, 지미 카터, 우드로 윌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바마는 세계 여러 나라 국민들 간의 외교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지대한 노력을 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대통령 취임 첫해여서 아직 이렇다할 업적을 세운 것도 없는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건 ‘세계 최강국 지도자로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더 많은 기여를 해달라’는 국제사회의 염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다.

카터는 대통령 퇴임 이후 세계의 분쟁지역을 돌며 각종 평화협상을 중재하고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사회 발전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94년 북한 핵개발로 전운이 감돌던 한반도를 찾아 김영삼 당시 한국 대통령과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 간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윌슨은 세계 거의 모든 강대국이 참전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을 조기에 종전시킨 점, 루즈벨트는 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 지배권을 놓고 격돌한 러·일전쟁(1904∼1905년)의 강화를 성공적으로 중재한 점이 각각 인정돼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엔 이들 4명보다 훨씬 더 큰 업적을 쌓고도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한 이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그 후임자인 해리 트루먼, 2차 대전 당시 유럽 대륙에서 연합군 사령관을 맡아 나치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외에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워렌 하딩, 허버트 후버 같은 미국 대통령들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최악 독재자도 후보로 추천… "수상했으면 끔찍"

취임 후 이란과의 핵협상을 깨고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기로 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 노선을 취하면서 국제평화에 다소 반하는 움직임을 보여 온 트럼프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가 적지않다. 그런데 노벨평화상 역사를 되돌아면 훨씬 더 부적절한, 자격 미달의 인물이 수상 후보로 추천된 사례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전쟁 기간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다. 그는 공교롭게도 2차 대전이 발발한 193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이웃 나라인 스웨덴의 한 국회의원이 히틀러를 추천한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왼쪽)와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 이제껏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이들 가운데 논란의 여지가 가장 큰 인물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히틀러는 한 해 전인 1938년 오스트리아를 위협해 독일과 병합시켰고, 이어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일부도 강탈했다. 1939년 들어선 체코의 나머지 영토는 물론 폴란드 땅 대부분까지 빼앗을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것을 놓고서 스웨덴 의회에서 큰 정치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2차 대전이 터지며 자연히 히틀러는 노벨평화상 후보군에서 멀어졌다. 전 세계를 휩쓴 전쟁의 여파로 1939년부터 1943년까지 5년간은 아예 노벨평화상 시상이 이뤄지지도 못했다.

전쟁 당시 히틀러의 최대 맞수였던 소련(현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도 1945년과 1948년 두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2차 대전에서 나치 독일 등 파시스트 진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이유였으나, 비밀경찰을 동원해 소련 국민 수십만명을 살해하거나 시베리아 등지로 유배를 보낸 철권 독재자한테 노벨평화상은 가당치 않다는 여론이 더 우세했다. 스탈린 역시 실제 수상에는 실패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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