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는 이날 ‘한반도에서 일어난 3·1 독립운동은?’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통치가 없었다면 징용공이나 위안부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3·1운동의 배경에 대해선 대륙 진출을 추진하던 일본이 1910년 대한제국을 병합하고 이후 조선인들은 언론, 출판, 집회 자유 같은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919년 3월 1일 지금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공원에 모여 있던 군중 속의 한 학생이 독립선언을 낭독하기 시작했고, 이에 호응한 사람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전했다.
아사히는 3·1운동 이후 일본의 극심한 조선인 단속 상황도 상세히 기술했다. 3·1운동을 계기로 약 2개월에 걸쳐 한반도 전역에서 항의 활동이 일어났고 일본 측의 단속도 격해졌고 약 75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아사히는 애초부터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없었다면 징용공이나 위안부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에서는 그때를 ‘일제시대’라고 부르며 학교에서 철저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전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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