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자신의 브렉시트 계획을 밀어붙이기 위해 ‘조기총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유럽연합(EU)과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 브렉시트’ 저지 법안에 동의하는 여당 내 반란군에 대한 최후통첩으로 해석된다. 다음주 초부터 5주간 의회 정회가 예정된 만큼 노 딜 방지법이 추진될 앞으로 1주일이 브렉시트 정국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존슨 총리는 2일(현지시간) 총리관저 앞에서 성명을 내고 조기총선과 관련해 “나도, 여러분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브렉시트 협상팀이 ‘다모클레스의 칼’(신변에 닥칠지 모를 위험) 없이, 선거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은 존슨 총리가 “조기총선을 시사했다”고 평했다. 그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EU에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며 합의가 되든 안 되든 오는 10월31일 시한에 맞춰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당은 노 딜 방지법을 통해 존슨 총리의 독주를 막을 태세다. 노동당 힐러리 벤 의원이 초안을 잡은 노 딜 방지법은 다음달 19일까지 의회가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를 승인하거나 노 딜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총리가 EU 측에 내년 1월31일까지 브렉시트 시한 연기를 요청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존슨 총리의 구상과 충돌한다.
영국 BBC방송은 “존슨 총리가 이 법안을 수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이번 주말이 되기 전 (조기총선 여부를) 확실히 알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정부 고위관계자도 “브렉시트 시한이 연기된다면 총선이 불가피하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총선 날짜로는 다음달 17일 EU 정상회의가 시작되기 직전인 10월14일이 유력하게 꼽힌다.
존슨 총리의 조기총선 카드는 당내 반란군에 대한 ‘협박’이라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여야 의석수가 팽팽해 데이비드 고크 전 법무장관, 필립 해먼드 전 재무장관 등 보수당 내 친EU 성향 인사들이 예고대로 찬성표를 던진다면 노 딜 방지법은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 존슨 총리가 이런 상황에서 조기총선을 시사한 데에는 ‘보수당 의원들이 가담해 노 딜 방지법이 통과된다면, 조기총선이 열릴 것이고 대신 반란군은 공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숨어있다는 설명이다. 고크 전 장관은 “사익보다 국익을 우선하겠다”며 노 딜 방지법 찬성 의사를 재확인했으나, 보수당 관계자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생각보다 많은 의원이 ‘정말 내 정치 경력이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조용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존슨 총리가 조기 총선에서 과반을 훨씬 상회하는 의석을 얻어 입지를 강화하거나 반대로 노동당에 정권을 내줄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도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정부가 다수의 지지를 받는 길을 찾지 못할 때 해법은 국민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조기총선에 찬성했다. 그러나 노동당 원로인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존슨 총리가 친 ‘코끼리 덫’일 수 있다. 유권자들이 코빈 대표를 선호하지 않고 야권이 분열해 있어 보수당이 승리할 수 있다”며 조기총선 신중론을 폈다. 임기가 2022년까지인 보수당 정권이 조기총선을 하려면 의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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