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이사장은 “강남 집값을 잡고 싶다면 서울 도심과 인근에 강남보다 더 좋은 아파트가 공급돼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에 몰아치는 부동산 광풍이 그에게는 낯설지 않다. 그가 재정경제부 차관 시절인 노무현정부와 판에 박은 듯 닮았다고 한다. 당시 노무현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3년간 집값을 잡기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필두로 수요를 죽이는 대책을 쏟아냈다가 소용이 없자 판교와 위례 등 제2기 신도시 공급확대 쪽으로 돌아섰다.(수요억제에 회의적이었던 박 차관이 공급확대 방안을 주도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가 2기 신도시 덕을 톡톡히 봤다. 문재인정부도 지금까지 수요억제에 매달려 있다가 뒤늦게 공급확대 대책을 세우고 있다.
―고강도 대책에도 전세·매매 값이 오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흔히 집을 사려고 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집값이 오르니 집을 사려고 한다. 박근혜정부 시절 미분양물량 해소가 골칫덩이로 등장할 정도로 사람들이 집을 안 사니 건설, 공급이 부진해졌고 공급물량도 감소했다. 전세물량도 줄어들자 전세가가 종전 집값의 50∼60%에서 80%까지 올랐다. 이 정도면 임대로 불편을 겪던 세입자들이 주택매입에 나서고 공급부족 탓에 집값 상승이 불붙는 부동산 파동이 발생한다.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공급확대 이외에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정부는 주택공급이 충분하다고 한다.
“주택보급률을 보고 주택공급이 웬만큼 충족되었다고 하는데 착각이다. 누구나 더 좋은 주택을 원한다. 수요가 없는, 없게 될 주택을 다 빼고 봐야 한다. 아직도 사람들이 원하는 주택공급은 엄청나게 부족하다. 2600만 주택청약예금 가입자가 뭘 의미하겠나. 더 나은 집에 대한 수요라고 봐야 한다. 요컨대 수요의 질적 변화까지 감안하며 주택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수요억제책이 효과가 없는 이유이고 진정한 집값 안정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증세나 선거공학적인 음모가 배후에 있다고 의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7·10 대책 여파로 전세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7·10 대책처럼 다주택자를 핍박해서 한 채만 남기고 다 팔게 하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그런데 누가 살 수 있나. 유주택자가 산다면 그 역시 다주택자가 되고 자금이 부족한 세입자가 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누구든 이 주택을 구매하는 이는 종전 조건으로는 전세를 놓지 않을 것이며 임대차 3법에서 보장한 기존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권’은 허공으로 날아갈 것이다. 다주택자 주택매도정책과 임대차 3법이 상충하면서 전세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세입자가 다주택자의 주택을 매입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주택구입자금 융자를 예외적으로 확대해줘야 하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이러다가 전세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현재 정부대책이 지속하면 서민들의 주거생활안정에 기여했던 전세가 사라지고 세입자의 고통은 커질 것이다. 집값 상승심리가 꺾인다면 임대인이 전세를 놓을 이유가 없고 대부분 월세로 돌릴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임대사업자를 묶어서 투기꾼 취급한 것은 큰 잘못이다. 다주택자들이 집을 사줘 공급확대에 기여해왔고 특히 전세공급은 서민 주거안정에 보탬이 됐다. 임대주택을 늘리는 건 부동산 안정에 도움이 된다. 충분한 임대주택이 공급되면 전세금이나 임대료가 싸지고 집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가 퍼지게 된다. 임대사업은 은퇴 노인들의 안정적인 노후대책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역대 정부에서 유효한 안정대책으로 임대사업 활성화를 시행했는데 이 정부도 초기에는 같은 정책을 펴다가 갑자기 뒤집었다. 단기매매차익을 일삼는 투기꾼을 솎아내고 장기임대사업을 활성화하는 게 옳다. 집값이 안정되면 임대인이 전세를 놓을 이유가 없어지고 이자율이 제로 가까이 가면 세입자가 전세 살 이유가 없어진다. 주택시장을 안정시키면 사라질 전세라는 제도를 두고 싸울 필요가 없다.”
―코로나19 여파로 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고용지표도 악화되고 있다. 현 경제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신성장 동력과 고용창출에 실패했다. 돈을 쓰는 일자리, 세금을 쓰는 일자리는 고용 통계를 분식하는 것일 뿐이다. 문재인정부뿐 아니다. 2000년 이후 20년간 되는 게 없는 나라였다. 중국은 안 되는 게 없는 나라였다. 그 결과가 한·중 경제의 역전이다. 제조업은 반도체 등 일부를 빼곤 대부분 추월당했다. 규제가 안 풀리면 한 발짝도 못 나간다. 미국, 중국에서 되는 건 다 되게 해줘야 한다. 한국 기업도 미·중의 공룡기업들만큼 자유를 줘야 한다.”
―평소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서비스산업 육성을 강조했다. 제조업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제조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일자리 만들기에 아무래도 덜 효과적이다.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 있는 제조업과 관련해서 정부가 할 일은 기업과 유능한 젊은이들에게 맡겨 놓고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뿐이다. 국가는 낙후된 분야에 도움을 줘야 한다. 현재 서비스는 통신과 전기, 의료, 교육, 금융까지 하나같이 가격 규제에 허덕인다. 산업별 규제도 금산분리, 원격진료, 원격교육, 투자개방형 병원, 국립공원 케이블카 등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서비스는 누군가의 일자리이자 생업이고 세금을 내는 기업이다. 규제 혁파는 나랏돈 안 쓰고 효과도 많이 나고 세수증대로 이어진다.”
―한국형 뉴딜 종합계획은 신산업육성과 일자리 창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국형 뉴딜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연장선상에서 지속 추진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다만 생명공학, 의료 및 전후방산업이 빠진 건 납득이 안 된다. 첨단산업 문제는 대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의 우리나라 반기업정서를 그대로 두곤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장 노동’을 전제로 한 노동법도 새로운 산업, 청년창업, 벤처기업에는 전혀 맞지 않는 굴레다.”
―얼마 전 노사정협약이 체결됐지만 민주노총이 빠졌다. 노동개혁이 진전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경총 회장으로 김동민 민주노총위원장과 이룬 노사정 대타협도 실천에 이르지 못했다. 원론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공장, 직장, 가게에 머무른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간주하는 시대는 가고 있다. 노동시간 계량을 전제로 한 모든 제도가 점차 무의미하게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주종을 이루는 시대에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법으로는 기업 투자를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이미 취직해 있는 사람, 그중에서도 노조가 있는 가장 좋은 직장에 취직해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철통같이 지키는 노동법과 규제를 아직 취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고쳐야 한다. 통상임금의 정의 확대, 정년 연장,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역대 정부가 이미 취직해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일만 열심히 해왔다. 기취업자의 기득권을 깨지는 못하더라도 미취업자에게 취업의 자유를 준다는 차원의 노동개혁이라도 해 내지 못한다면 일자리 정부는 수포가 될 것이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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