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마다 폐업물품 가득… 더 쌓아둘 곳조차 없어요”
자영업 직격탄에 매물 크게 늘어
개업은 뚝 끊겨 중고매장 파리만
17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황학동 주방거리. 거리 입구에 들어서자 대형 냉장고와 스테인리스 작업대 등 온갖 주방기구를 밖에 쌓아 놓은 점포들이 길게 늘어섰다. 입구를 찾기 어려울 만큼 집기들이 매장 앞을 가득 채운 곳도 여럿 보였다. 전날 비가 온 탓인지 점포 앞에 놓인 기구들은 비닐로 겹겹이 덮여 있었다. 일부 대형 점포 앞에는 주방기구를 싣고 오는 용달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바쁘게 오갔지만, 대부분 상인들은 매장 안이나 골목에 의자를 놓고 한가롭게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황학동 주방거리에는 폐업한 식당에서 들어온 주방기구를 새로 창업하거나 물건을 추가로 들이려는 식당에 되파는 중고매장이 밀집해 있다. 식당이 폐업하고 창업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어 외식업 경제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장소로도 여겨져 왔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식당들이 줄줄이 폐업하면서 이곳 상인들 역시 매출 절벽을 맞는 등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주방용품점을 운영하는 박윤희(57)씨는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압력밥솥을 매장 한편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었다. 박씨는 남편과 함께 30여년간 이 자리를 지켰지만 요즘과 같은 상황은 겪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터진 뒤에도 버티고 버티던 식당들이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상향한 뒤로는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우리도 폐업 매물이 쏟아져 더 이상 보관할 곳도 없는 실정이다. 장사한 이래로 최악의 경기 상황”이라고 전했다.
소상공인인 이들 역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매출 감소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식당에 온수기를 비롯한 냉난방기를 판매하는 이중영(59)씨 가게에는 최근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하루 평균 1∼2명의 손님이 찾는다. 1층 매장과 2층 창고 임차료로 매달 220만원을 내는 이씨는 적자를 보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여기 상황은 거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물건 싣고 오는 용달차와 손님들로 여기가 꽉 막혔는데 지금은 상인들밖에 없지 않냐”고 되물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이동주 의원실이 공개한 ‘서울시 식품접객업소의 폐업률’에 따르면 전체 영업 업소 대비 폐업 업소를 나타내는 폐업률이 지난 8월 0.78%를 기록했다. 폐업률이 6월(0.72%)과 7월(0.68%) 점차 감소하던 추세에서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다시 높아진 것이다.
부동산114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가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지난 2분기 서울의 상가 수가 37만321개로 1분기(39만1499개)보다 2만1178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음식업 상가의 경우 1분기 13만4041개에서 2분기 12만4001개로 1만40곳이 문을 닫았다.
월 160만원의 임차료를 낸다는 다른 판매점 사장은 최근 정부의 소상공인대출을 이용해 30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는 “이곳의 80∼90%가 임차료를 내는 소상공인들이다. 이 일 그만두면 할 게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앉아서 돈만 까먹고 있는 실정”이라며 “물건이 들어오면 수리해서 되팔아 왔는데 요즘은 완전 ‘스톱’된 상태다”고 말했다.
일부 상인들은 코로나19 이후 재판매할 매물이 오히려 줄고 있다고도 했다. 한 판매업체 사장인 윤상호(52)씨는 “경기가 서서히 나빠지면 식당 상인들이 전환할 업종을 생각할 시간이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식당 문은 닫았지만 어떻게 할지 결정을 못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인근의 또 다른 업소 사장은 “코로나19가 장기화해서 웬만하면 폐업하지 않을, 오래 장사한 사람들까지도 망하고 있다”며 “오래된 식당에서 사용한 집기들은 대부분 중고로도 팔 수 없는 상태가 많아서 여기로 오기보다 고물처리를 해버린다”고 설명했다.
중고 PC의 ‘집결지’인 서울 용산전자상가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곳 상가의 복도 곳곳에는 폐업한 PC방에서 사용하던 중고 PC가 수십대씩 쌓여 있는 실정이다. 부동산114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PC방과 노래방 등이 포함된 관광·여가·오락 업종은 1분기 1만1714개에서 2분기 1만454개로 10.8% 감소해 폐업률이 가장 높은 업종이다.
PC방 자체를 ‘급매’로 내놓는 자영업자들도 늘고 있다. 서울에서 PC방을 운영 중인 김현성(31)씨는 “예전에는 아무리 장사가 안 돼도 용돈벌이는 됐는데 코로나19 이후로는 매출이 마이너스”라면서 “권리금도 처음엔 2000만원에 올렸다가 계속 사람이 구해지지 않아 협의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중고 PC 임대 제안 등도 많이 들어오는데 그럴 만한 사양이 되지 않아 일단 무작정 인수할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라면서 “소형 PC방이라 1m 간격을 지키려면 40여대 중 10대밖에 손님을 받을 수 없으니 넘기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한편에선 중고 PC 매물이 많아지고, 재택근무와 온라인 학습 등으로 PC 수요는 늘어나면서 호황을 누리는 업체들도 있다. PC방 이용이 어려워지자 아예 컴퓨터를 구입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용산 선인상가를 찾았다는 대학생 A씨는 70만원대에 게임용 조립 컴퓨터를 구매했다. A씨는 “미리 인터넷으로 견적을 내고 가게를 찾아 수령했다”면서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평소보다 컴퓨터 가격도 오르고 가게와 연락도 쉽지 않았지만, 집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선인상가의 유만식 상우회 회장은 “폐업한 PC방에서 나온 중고 매물이 전국 각지에서 들어오고 있다”며 “재택근무가 길어지고 PC방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노트북과 데스크톱 판매가 호황인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집합금지 대상이 유지되고 있는 노래방 업주들은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며 영업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광주시 노래업협동조합원 100여명은 이날 광주시청을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노래방을 고위험시설에서 제외하고 업종이 아닌 업장별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주들은 “음악홀과 일반 노래방은 다르다”며 “카페나 식당은 소독하고 이용하라고 하면서 왜 모든 노래방을 싸잡아서 규제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민·유지혜 기자, 광주=한현묵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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