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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계 대신 놀이 같은 상담… 마음의 벽 허물죠”

입력 : 2021-05-13 20:05:16 수정 : 2021-05-13 22: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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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산업정보고 ‘날라리 교장’ 방승호 서울교육청 교육연구관
탈 쓰고 다니고 교정 돌며 버스킹
5년간 부임… 학폭 ‘0’ 흡연율 ‘뚝’
다큐 영화 ‘스쿨 오브 락’ 주인공
“속 깊은 대화… 아이들 꿈 찾아줘”
13일 서울 강서구 서울시교육청학생교육원 ‘찾아가는 수련원’에서 방승호 교육연구관이 기타를 들고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단순히 문제아로 보이던 학생들도 놀이를 통해 마음의 벽을 허물고 뻣뻣한 훈계 대신 편안한 대화를 나눠보면 다르게 보입니다. ‘들어주는 사람’의 존재가 아이들 안의 천재성을 발견하게 하죠.”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13일 서울 강서구의 서울시교육청학생교육원 ‘찾아가는 수련원’에서 만난 방승호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관은 학생들의 마음을 열고 꿈을 찾아주려면 딱딱한 교육 틀과 위계부터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아현산업정보고에서 5년간 교장으로 지낸 그는 ‘날라리 교장 선생님’으로 불렸다. 동물 탈을 쓰고 교정을 다니며 학생들과 농담을 하고 틈만 나면 기타를 들고 버스킹을 하는 등 재미와 문화적 접근을 강조하는 독특한 교육방식을 선보여 붙은 별명이다. 발매한 교육 관련 노래 앨범이 8장이나 되는 ‘8집 가수’이기도 하다.

 

아현산업정보고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공립 직업학교다. 학업 외에 다른 진로를 찾으려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1년간 위탁교육을 받는 곳이다. 한 때 ‘문제아들이 모인 학교’로 낙인 찍혔지만 그런 이미지는 방 전 교장의 새로운 공교육 모델을 통해 완전히 달라졌다. 가방을 들고 오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배울 의지가 낮고 지각생도 많던 학교는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성과를 내는 학생이 많은 학교로 바뀌었다. 서울에서 학교폭력이 많은 3대 학교 중 한 곳으로 꼽히던 아현산업정보고는 방 전 교장 부임 7개월 만에 ‘학교폭력 제로’ 학교로 바뀌었다. 60%가 넘던 학생 흡연율도 방 전 교장이 ‘노 타바코(No Tobacco)’라는 노래를 만들어 교내 곳곳에서 버스킹을 하며 부르자 적발률이 0건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성공적인 변화를 끌어낸 비결로 방 전 교장은 ‘재미’를 꼽았다. 부정적인 메시지로는 달라지지 않던 학생들이 노래와 놀이가 주는 재미 앞에서는 무장해제됐다. 재미의 힘을 알기에 전교생을 상대로 ‘놀이 같은 상담’도 했다. 교장실 문을 늘 활짝 열어두고 찾아오는 학생들에게는 팔씨름이나 2인3각 같은 놀이부터 하자고 했다.

 

그는 “엄숙하게 마주 앉아 훈계해선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며 “대화를 나누기 전 먼저 간단한 게임을 하고 친밀감을 쌓으면서 상황에 몰입하게 하면 아이들 속의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꿈을 찾아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질문법도 바뀌어야 한다. ‘네 꿈이 뭐야’하고 다그치듯 물어선 아이들이 답을 찾을 수 없다. 알고 보면 꿈이 없는 아이는 없는데 그게 뭔지 찾지 못할 뿐”이라며 “다양한 질문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여러 상황을 가정하며 진짜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13일 서울 강서구 서울시교육청학생교육원 ‘찾아가는 수련원’에서 방승호 교육연구관이 꿈이 없던 아이들을 변화시킨 교육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학교의 역할에 대해 방 전 교장은 “아이들을 용기 내게 하고 한 발자국 떼는 것까지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꿈을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도록 독려하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한 발짝만 떼고 나면 두 발짝 나아가는 건 보통 스스로 한다. 세 발짝 나아가는 것부턴 더 쉬워진다”며 “그런데 그 첫 발자국 떼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확인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이들이 아예 나아가질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수학공부를 진짜 못했는데 이제 해보고 싶다고 하는 아이가 있다면 ‘아무 수학책이나 단 10분이라도 보고 인증사진을 선생님한테 보내봐라’라고 한다. 그리고 정말 해내면 잘했다고 칭찬해준다”며 “그 첫 발자국을 성공하고 칭찬받고 나면 그 방향으로 다음 발자국도 뗄 수 있다. 한 발짝 떼는 게 참 작은 일인데 그 한 발짝을 스스로 떼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그는 교사 연수 강화와 학교 전체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연수를 통해 충분히 교육된 담임선생님과 전문성 있는 상담선생님들, 그리고 학교문화를 총체적으로 개선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교장·교감이 있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며 “담임교사 개인이 떠맡기엔 너무 어려운 문제지만 학교의 모두가 한 편이 되어 계급장을 떼고 자유롭게 의견을 교류하면 최선의 방법을 분명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특이한 교육법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됐다. 이날 개봉한 영화 ‘스쿨 오브 락’은 방 전 교장과 아현산업정보고 학생들을 2년간 관찰한 영화로 지난해 헬싱키 국제 교육영화제에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 초청받았다. 영화 개봉에 앞서 2019년에는 30분짜리 짧은 TV 다큐멘터리 버전의 영상을 일본 방송사 NHK가 수입해 가 방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학교 현장을 떠나 교육연구관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방 전 교장의 새로운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교육연구관으로서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전례 없는 장애물이지만 새로운 시도의 기회이기도 하다”며 웃었다. 그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해 오프라인 활동은 진행하지 않고 있지만 초·중·고 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온라인 연수와 상담으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하면 혼나기만 했던 롤(LOL·League of Legend)게임과 영어교육을 접목시킨다든지하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있다. 아이들이 뭔가에 몰두하는 건 좋지만 게임만 하면 기본 학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기본 학력 증진 방안을 함께 하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교직 생활 35년 동안 만났던 학생들의 기억 속에 어떤 선생님으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방 전 교장은 ‘친구 같은 파트너’라고 답했다. 그는 “아현산업정보고 졸업생들 중에 학교를 떠난 후에도 저를 찾아와 노래를 같이 만들고 연주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며 “그렇게 언제든지 찾아와 ‘선생님, 이거 같이 해봐요’ 할 수 있는 그런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 내 나이가 80이 되고 아이들이 40대가 돼서도 새롭고 재밌는 걸 함께 할 수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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