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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대선주자들이 분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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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19 23:23:05 수정 : 2021-07-19 23: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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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 감동도 없는 선거 메시지
프레임에 갇힌 역사·이념 논쟁
출사표 던지면서 공허한 말잔치
내년 대선은 새 이정표 세워야

대통령 선거 시즌의 막이 올랐다. 여당에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등 경선후보들이 진흙탕에서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야권에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이 출사표를 던진 데 이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대권 도전에 나섰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대선주자들의 발언에 깊이가 없다는 점이 우려를 낳는다. 역사나 이념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과거 프레임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이 지사는 “친일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으로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했다.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새로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은 “이 정권은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독재요 전제”라고 했다. 최 전 원장은 “헌법정신을 지키고 법치주의를 정착시켜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발언의 정치적 의도는 분명하지만,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는 시점에서 나온 말임을 감안하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박완규 논설실장

해방정국에 관한 이 지사의 인식은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 35년에 걸친 일제강점기를 감안하면 친일세력 청산은 한계가 있었고, ‘미 점령군’은 일본군 무장해제를 염두에 둔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했다’고 단언한 것은 역사 인식의 가벼움을 드러낸다.

여전히 링에 오르지 않은 채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윤 전 총장의 자유민주주의 발언은 뜻밖이다. 국민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공허한 말잔치로 날려버렸다.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니 여론조사 지지율도 하향곡선을 그린다. 자업자득이다. 최 전 원장의 메시지는 판에 박힌 듯한 말이어서 울림이 없다. 정치 입문자의 티를 물씬 풍긴다. 검사 출신인 윤 전 총장과 판사 출신인 최 전 원장이 헌법을 정치적 가치의 근원으로 제시한 것도 눈길을 끈다.

엊그제 제헌절을 맞아 헌법을 다시 들여다봤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적인 사상과 비전을 담은 틀이다. 법학자 이효원은 헌법을 “인공적인 인격체인 국가가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할 것인지를 고민해 규범으로 체계화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1948년 제정된 헌법 이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제1조는 변함이 없다. 제헌 헌법에서는 민주주의와 관련해 “민주독립국가를 재건” “민주주의 제(諸) 제도를 수립”이란 표현이 들어 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는 “4·19 민주이념을 계승” “조국의 민주개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같은 구절이 있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기본원칙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사실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불안정하다. 지난 세기 이후 민주주의 위기론이 제기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쇠퇴하지 않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저서 ‘민주주의’에서 “일단 한 국가에서 민주주의 제도가 단단히 자리 잡게 되면 민주주의 제도는 더욱 튼튼해지고 탄력적인 기운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저급한 인식 수준일 것이다.

대선주자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 지금의 지지율은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음을 모르는 유권자는 없다. 당장 대선주자들이 할 일은 자신의 정치철학을 밝히고 그 토대 위에서 미래 비전과 정책 구상을 치밀하게 다듬는 것이다.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지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근거로 논쟁이건 말싸움이건 벌여야 한다. 지지율이 허명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입증해야 할 때다.

금세기 들어 치러진 대선에서는 막판에 접어들수록 정책 차별은 흐릿해지고 이미지로 승부하는 모양새였다. 내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는 달라져야 한다. 이번 대선만큼은 과거에 발이 묶여선 안 된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이정표가 돼야 한다. 대선주자들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메시지를 내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부터 분발하기를 바란다.


박완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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