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새 하루 3만명으로 늘어
대부분 육로 이란·파키스탄행
유럽 “시간 흐르면 유입” 우려
獨 메르켈도 이번엔 거리두기
伊선 수용의사 불구 형편 안돼
“상상 난민을 두고 지레 겁먹어
유럽의 이미지만 실추” 지적도
EU선 18일 아프간 사태 논의
탈레반이 접수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유럽 국가들이 고민에 빠졌다. 아프간과 유럽은 거리상으론 제법 떨어져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유럽으로 유입될 것이라 우려한다. 5∼6년 전 시리아 난민이 대거 몰려들며 극심한 내분을 겪었던 전례도 있다.
1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40만여명이 아프간을 떠난 것으로 추산된다. 일주일에 2만∼3만명이던 탈출 행렬은 최근 열흘 동안에는 하루에 3만명에 이를 정도로 불어났다.
이들은 주로 육로를 이용해 인접한 이란이나 파키스탄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간이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통제 아래 있었을 때도 미국이나 유럽 이주를 신청하는 아프간 국민이 수천명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미국·유럽행에 오르는 이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 때 미군을 도운 아프간 국민에게 특별이민비자(SIV)를 발급했다. 그런데 신청자가 2만여명에 달하면서 유럽 동맹국에 이들을 일시 수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현재 이 제안을 받아들인 나라는 알바니아와 코소보다.
에디 라마 알바니아 총리는 전날 “우리는 독재자 밑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며 “아프간 난민을 받아들이는 건 명예이자 의무”라고 밝혔다. 알바니아는 1998년 코소보 사태로 집단학살 위기에 놓인 알바니아계 주민 수십만명을 받아들인 바 있다.
나토 회원국 일원으로 아프간전에 참여한 대부분 유럽 국가는 ‘우리를 도운 아프간 사람들을 돕겠다’는 정도로만 입장을 밝혔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이탈리아는 아프간 국민, 특히 여성 인권을 수호할 방법을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들과 논의할 계획”이라고 했으나 가디언은 “드라기 내각에 극우 정당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실제 이탈리아가 얼마나 많은 아프간 난민을 수용할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2015∼2016년 시리아 난민이 유럽에 몰려왔을 때 “우리는 감당할 수 있다”며 적극 받아들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번에는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그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모두 받아들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고 밝힌 데 이어 이날도 “1만명의 아프간 난민이 독일로 올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아프간 주변국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프간 국민을 최대한 ‘인접국’에 머물게 하자는 취지다.
오스트리아는 난민 수용에 부정적이다. 망명 신청이 거부된 아프간인은 강제 추방하겠다는 방침이다. 오스트리아·덴마크·독일·네덜란드 등은 지난 5일 EU 집행위에 아프간인 강제 추방은 자국 권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이 초읽기에 들어가며 덴마크 등은 당분간 추방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오스트리아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칼 네하며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보호가 필요한 사람은 출신국 주변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해 아프간 인접국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오스트리아 국민 90%가 정부의 강경한 방침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U는 18일 내·외무장관 회의를 열고 아프간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다.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상상 난민’을 두고 지레 겁먹는 듯한 태도가 유럽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게랄트 크나우스 유럽안정이니셔티브(ESI) 의장은 “5∼6년 전보다 국경을 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졌고, 아프간 난민 중 유럽땅을 밟는 이도 일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유럽은 과장된 추정치로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진짜 문제는 아프간 난민이 유럽에 밀려들어오는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20년간 싸웠던 사람들을 우리가 버렸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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