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유일·생태·힐링 수식어를 달고
이름난 관광지마다 연결된 다리
절벽을 뚫고, 호수에 콘크리트를 쏟아붓고도
‘값싼 베끼기’는 멈출 기미가 없어
관광객 유치에 “생태계 보전” 의미없는 외침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관이라고요? 이제 직접 밟고 들어가 여러분 스스로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보세요.’ 전국의 산하에 우후죽순 들어선 관광 시설물에 내재하는 구호다. 특히나 근래 들어 명승지마다 유행처럼 번지는 ‘출렁다리’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빼어난 경관이 있는 곳이라면 산이든 강이든 가리지 않고 지어지는 이 구조물은 전국적으로 200여개에 이른다. 지난해 6월 말 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새로운 출렁다리 25개가 생겼다. 한 달에 2개씩 늘어난 셈이다.
지자체는 국내 최장, 유일, 생태, 힐링 등의 수식어를 달고 홍보에 열을 올린다. 이름난 관광지에 스릴이라는 자극적인 요소가 더해지니 단기간에 다수의 관광객이 몰린다. 시민들의 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머지않아 비슷하지만 더 길고, 높고, 짜릿한 시설물이 인근 지역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베끼고 베껴진 욕망의 결과물들은 대부분 일회용 스펙터클로 소비되고 만다.
출렁다리 열풍은 다양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이달 18일 개장한 강원도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의 절벽 구간에 포함된 잔도(棧道)는 ‘보기만 하지 말고 직접 걸어 들어가라’는 출렁다리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다.
잔도는 절벽에 구멍을 뚫고 기둥을 박아 그 위로 놓은 길이다. 경관 훼손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이 일대가 유네스코(UNESCO)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사실을 생각하면 아연하다.
멸종위기종 서식지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이달 13일 개장한 ‘영랑호수윗길’은 강원도 속초 영랑호를 가로지는 폭 2.5m, 길이 400m의 부교(浮橋, floating bridge)다. 언뜻 이름만 보면 ‘물 위로 부유하는 형태이겠거니’ 생각할 수 있으나, 호수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생태계 교란을 피할 수 없다.
영랑호는 담수와 해수가 혼재하는 독특한 생태적 특성을 보인다. 큰고니, 혹고니, 큰기러기, 원앙, 수달 등 법정보호종이 발견된다. 부교가 단절한 좌우 수면의 물결은 육안으로도 볼 수 있었다. 야간에는 길 따라 색색의 조명이 빛났다. 보전 가치가 높은 야생동물 서식지에서 행해진 토건사업임에도 평가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환경영향평가는 생략됐다.
출렁다리, 잔도, 부교 등 앞서 언급한 시설물들은 하나같이 ‘연결’을 이야기한다. 값싼 체험과 스릴을 목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이 연결들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경기, 충북, 경북, 울산, 강원 등 7개 지역을 이동하며 갓 개통한 그리고 개통이 임박한 시설물들을 기록했다. 각각 다른 장소에 다른 듯 비슷한 금들이 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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