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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사전에 한국 표제어로
대박 좇는 것은 고통·분노 더할 뿐

올해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한국어 표제어 26개가 새로 실렸다. 새로 등재된 표제어는 한류, 먹방, 언니, 오빠, 갈비, 불고기, 김밥, 잡채, 동치미, 반찬, 치맥, 트로트, 한복, 만화 등 한국인이 자주 쓰는 말이다. 대박도 새로 등재된 표제어 26개 중 하나다. 한 세대가 가고 새 세대가 오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게 말이다. 말의 주인이 바뀌니 부리는 말 또한 달라진다. 시대와 풍속이 바뀌면서 새 말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유명인조차 ‘대박!’이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뱉어낸다. 말의 경우 전염과 모방의 규모가 클수록 사회적 정합성이 크고 쓰임새가 넓다는 증거일 테다. 대박이란 말은 ‘대박이 나다’라는 기본형에서 왔을 텐데, 두루 널리 쓰임에도 그 기원이나 발생론적 근거가 밝혀진 적은 없다. 2014년 1월 6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연두 교서에서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선언해서 더 유명해진 말이다.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국민의 합의를 만든 효과도 없지 않지만 공적인 언어로는 부적합하다는 느낌이다.

장석주 시인

말이 사회의 거울이라면 대박이란 말에 비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대박은 큰 횡재나 산술적 평균을 크게 웃도는 성공을 일컫는다. 카지노에서 터지는 ‘잭팟!’과 동일하다. 대박은 심리적 절망감을 꿰뚫는 뜻밖의 성공에서 비롯하는 거친 비명이고 환호성이다. 무엇보다도 대박이란 말은 천박하다. 조악한 이익추구라는 함의를 품고, 물신주의를 도드라지게 드러내며, 우리 안의 천한 욕망을 까발려 보여주는 까닭이다. 대박이 숨긴 사회적 함의는 공정성을 파괴하는 요행, 그리고 과도한 욕망으로 일그러진 집단적 소망표상이다.

어쨌든 대박은 대유행의 시기를 지나 일상어로 안착한다. 이는 우리 사회를 ‘대박 사회’라고 부를 만한 현상이다. 자기가 투자한 시간이나 노력에 견줘 훨씬 더 수익을 벌어들이는 한탕주의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대박은 삶을 위해 뿌린 노동과 수고의 가치를 집어삼킨다. 또한 삶을 한탕주의로 오염시키고, 미래를 향유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이 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건강한 꿈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일확천금의 백일몽을 키우는 곳임을 드러낸다. 대박 사회는 윤리적 함량이 모자라는 사회다. 요행이 활개 치는 병든 사회, 혹은 비정상이 정상을 압도하는 사회, 결과적으로 생명의 헐벗음을 불러오는 사회다. 이렇듯 대박 사회는 제 노력에 견줘 훨씬 더 큰 성공을 꿈꾸는 배금주의 지향의 사회이자 존재를 공회전시키는 환각 사회다.

한동안 유행하던 ‘행복하세요!’나 ‘부자 되세요!’라는 말과 대박이란 말은 닮았다. 이것들은 시대의 덕담이자 정언적 명령이었다. 행복은 여전히 그 위세를 떨치지만 정작 행복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행복은 노동과 수고에 대한 달콤하고 경이로운 보상이 아니다. ‘행복하세요!’가 그렇듯이 ‘대박!’도 현실의 정합성에서 일탈한 엉뚱한 과대망상이고, 이내 휘발되고 말 헛소리다. 따라서 대박이란 말이 드러내는 것은 한마디로 사회의 비정상적이고 병리적인 구조다.

장기불황에 겹쳐 코로나 19의 팬데믹이 덮친 사회는 소규모 자영업자의 꿈과 희망을 삼켜버리는 개미지옥이다. 대박은 이 지옥을 뚫고 나갈 거의 유일한 출구로 보인다. 그래서 대박의 꿈은 달콤하고 유혹적이다. 그러나 꿈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박의 꿈을 좇는 것은 고통과 분노를 더할 뿐이다. 아무리 곰곰 생각해도 대박은 사회적 의미의 생산과 무관하다. 오직 우연한 행운만을 강조하는 이 말에 투사된 무의식의 정동은 자본에 대한 과잉의 욕망, 즉 ‘나도 성공하고 싶다’가 아닐까? 대박이란 말은 대박에의 백일몽에서 빠르게 분열하고 증식한다. 우리는 대박은 없고 대박이라는 말만 과소비되는 사회에 사는 셈이다. 대박은 마법의 주문이 아니다. 우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도 될 수 없다. 대박은 계층 간 사다리가 사라진 사회에 울리는 공허한 우레고 썩은 동아줄이기 십상이다. 대박의 꿈에서 깨어나야 현실을 바로 볼 수가 있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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