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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RE100’ 논란이 씁쓸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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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10 23:28:37 수정 : 2022-02-10 23: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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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못 챙기면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을 낼 수도 있어요. 얼마 전에 ○○○위원장도 비슷한 말 했잖아요.”

 

“그러니까요.”

윤지로 국제부 차장

보름 전 취재원과의 식사 자리. 아는 척 맞장구를 쳤지만 불안했다. ‘흔들리는 눈빛 속에서 나의 무식함을 눈치챘을까. 주주대표소송은 뭐지, ○○○이 누구지?’

 

모르는 게 죄는 아니라지만, 적어도 부끄러운 순간은 있다. 어느 선부터 부끄럼의 영역인지는 저마다 다르다. 고기압이 어느 방향으로 도는지 국문과 교수님은 모를 수 있지만, 대기과학을 전공하는 학부생이 모른다면 심각한 문제다. GAP이라고 하면 보통은 의류 브랜드나 부동산 갭투자를 떠올리면 그만이지만, 농업 정책 관계자가 농산물우수관리 인증을 모르면 답답한 일이다.

 

앎이 내 업무, 내 분야에서 상식에 해당될 때 모름은 자괴감이 된다. 지난 3일 대통령 후보 TV토론은 대한민국에서 국가 지도자에게 기대되는 상식의 선이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부동산, 경제, 안보 등 당연히 대통령의 영역이라고 믿는 분야에서 후보들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KAMD(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등을 언급하며 활발한 토론을 이어갔다. 토론 막바지에 이르러 문제의 RE100(재생에너지 100%)이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질문 첫 마디는 “RE100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입니까”였다. 이어 “EU택소노미가 중요한 의제인데요, 원자력 논란 있잖습니까?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인가요?”라고 물었다. 앞서 상대의 공약과 본인의 생각을 요약한 뒤 질문을 던지는 방식과는 사뭇 다른 패턴이다. RE100과 택소노미가 ‘앎의 영역’인지 확인하는 데 목적을 둔 게 아닌가 싶은 이유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대답은 “RE100이 뭐죠?”, “EU 뭐라는 건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였다. 그는 토론 전반부에서도 “저는 미래 산업의 핵심은 재생에너지에 있지 않다고 본다. (중략) 굳이 뭐…”라고 답한 터였다. 어차피 핵심 이슈는 아니므로 관련 용어를 모른다고 부끄럽거나 기죽을 일도 없다.

 

토론이 끝난 뒤 SNS에서는 ‘대선 후보가 그것도 모르냐’, ‘대통령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느냐’ 논쟁이 벌어졌다. 경제, 안보같은 전통적인 이슈와 달리 기후변화 대응은 국가 지도자 상식의 경계에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독일 새 내각엔 경제기후보호부가 있다. 우리 관점에서 성장과 규제 양극단에 있을 법한 두 부처가 한 지붕 아래 모인 셈이다. 이 부처 장관은 부총리 즉, 올라프 숄츠 총리에 이은 서열 2위다. 네덜란드에도 비슷한 성격의 경제기후정책부가 있고, 영국과 덴마크에선 기후와 에너지가 한 부처다. 에너지를 전환하고 생산 방식을 바꾸는 것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후보들마다 입이 부르트도록 강조한 그 ‘민생’ 말이다.

 

한쪽에선 RE100에 관한 질문을 미끼처럼 던지고, 다른 쪽에선 그건 미끼거리도 안 된다는 식으로 응수하는 사회. 부끄러움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아는 국민 몫이다.


윤지로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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