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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지킨 터줏대감 노포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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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26 17:00:07 수정 : 2022-06-26 17: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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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자리 지킨 ‘을지면옥’ 25일 영업 종료
4월엔 42년간 장사한 ‘을지OB베어’ 강제 퇴거
생활문화유산 지정된 ‘양미옥’ 화재로 사라져
60년 전통 소곱창집 ‘우일집’도 재개발 앞둬
을지면옥 영업 마지막 날인 지난 25일 영업종료 한시간을 남겨둔 오후 2시쯤 손님들이 줄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20년 가까이 다니던 곳인데 참 아쉽습니다.”

 

26일 서울에 거주한 A(50대)씨는 전날 영업을 종료한 서울 중구 을지면옥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1985년 문을 연 을지면옥은 37년간 한 곳에서 평양냉면을 선보인 을지로 대표 맛집이었다. 그러나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에 재개발 절차가 본격화되면서 해당 구역에 위치한 을지면옥도 문을 닫게 됐다. 

 

A씨는 “슴슴한 냉면에 기름기 쫙 뺀 제육이 일품인 곳이었다”며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할 줄 알았는데 을지로를 지나가도 가게가 없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전날 을지면옥 앞에는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며 긴 줄이 이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가장 좋아하던 평양냉면 집이었는데 너무 아쉽다”, “식사 후 한참동안 가게 앞을 서성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서글퍼보였다” 등의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을지면옥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 이전할 계획이다.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4일 을지면옥에게 재개발 시행사에 건물을 인도하라고 명령했다. 을지면옥이 속한 세운지구 3-2구역은 2017년 4월 재개발 사업시행 인가를 받았고 2019년부터 보상 절차와 철거 등 재개발 절차가 추진됐으나 보상금 액수를 두고 을지면옥과 시행사간 갈등이 빚어졌다. 재개발 시행사는 을지면옥을 상대로 건물 인도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지만 을지면옥 측이 항소했다. 이에 시행사 측은 본안 소송의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부동산 명도 단행 가처분을 신청했고 결국 받아들여졌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터줏대감이었던 을지OB베어의 모습. 지금은 철거된 상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을지면옥 뿐만이 아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을지로의 노포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을지로3가에서 42년간 장사를 이어온 을지OB베어가 강제 퇴거를 당하기도 했다. 을지OB베어는 중소벤처기업부가 ‘백년가게’로,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한 곳으로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원조 가게였지만 건물주와의 오랜 임대료 갈등을 겪어왔고 끝내 명도소송에서 패소했다. 

 

화재로 인해 사라진 노포도 있다. 을지로3가를 대표하는 양대창 맛집인 양미옥은 지난해 11월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전소됐다. 29년간 한 자리에서 장사를 이어온 이 식당은 과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 즐겨 찾는 유명식당으로 ‘생활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금은 화재로 을지로점이 문을 닫았고 남대문점에서만 영업을 하고 있다. 

세운3구역 내 오래된 음식점인 우일집. 연합뉴스

이밖에도 60년 전통의 소곱창집인 ‘우일집’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많다. 우일집은 2대에 걸쳐 운영해오고 있는 곳으로 앞마당에 노상 테이블을 설치해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고 가성비가 좋은 편이라 단골이 많은 가게다.

 

이처럼 손님들고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가게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있지만 “서운하다”는 반응이 많다.

 

을지로를 자주 찾는다는 직장인 김모(30)씨는 “재개발도 좋고 새로운 가게가 생기는 것도 좋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가게들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충무로 인근에서 근무하는 이모(24)씨는 “추억이 사라지는건 아쉽지만 장소가 변한다고 해서 꼭 맛이 변하는 건 아니니 을지면옥 같이 오래된 집들이 맛에 의미를 두고 재개업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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