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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서 본 장면 자꾸 떠올라… 만원 지하철만 타도 불안” [이태원 참사 100일]

, 이태원 참사

입력 : 2023-02-06 06:00:00 수정 : 2023-02-06 09: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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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시민 등 트라우마 여전
“일상 전반 불안… 사회구조 문제”
“충분한 추모·애도 필요” 의견도

인적 줄어 침묵의 거리 된 ‘그곳’
이태원역 승하차 인원 유례없는 감소

“내 목숨 내가 지키자” 당국 불신
사건 접한 온 국민이 트라우마 당사자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의 생때같은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압사 참사는 남은 이들에게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가야 할 책무를 남겼지만, 현실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은 5일 세계일보가 만난 유가족과 추모객, 그리고 이태원 상인과 시민들은 사회 곳곳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소모적인 ‘참사의 정치화’, 재발방지 논의 실종, 미온적인 책임자 규명 등으로 이태원 참사의 교훈이 퇴색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도 여전했다.

 

2017년부터 6년간 이태원에 거주하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고명찬(35)씨는 “현재 이태원을 보면 당장 체감하지 못해도 분명히 심리적으로 어딘가 고장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며 “이 사건을 접한 전 국민이 트라우마 당사자”라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이씨는 “최근 1호선 종각역에 내렸는데 계단으로 승객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자연스럽게 이태원 참사가 머리에 떠올라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며 “우리 모두가 이태원 참사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생인 김현수(24)씨는 사고 후유증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가면 공포를 느낀다고 전했다. 김씨는 “(참사 후로) 사람 많은 곳을 가면 종종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며 “지하철을 탈 때 과거에는 사람이 많아 몸을 움직이기 힘들 만큼 붐벼도 참고 갔는데 이제는 ‘이거 너무 아닌 것 같다’ 싶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중간에 내린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인 김민주(28)씨도 “참사 후로 지하철을 탈 때나 여행을 갈 때 안전사고 걱정에 불안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때까지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번 참사를 겪으면서 (안전 문제가)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겠다, 난 그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일상 전반에 불안감이 커졌다”고 토로했다. 현장에서 참사를 목격한 김모(27)씨는 “출퇴근 지하철을 타면 다른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환승하는 상황이 전에는 짜증 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들어 견디기 어렵다”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김명임(58)씨는 “세월호 참사 때랑 바뀌지 않았구나 느꼈다”며 “우리 아이들 위해 활동하며 남아 있는 아이는 똑같은 일 겪는 사람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안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 날의 아픔 기억하겠습니다 ‘이태원 압사 참사’ 100일을 맞은 5일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로 불리는 이 골목에는 ‘기억은 힘이 셉니다’라는 현수막과 함께 시민들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작성한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참사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민들

 

희생자 유가족들은 여전히 참사 당일인 지난해 10월 29일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참사 현장을 목격한 많은 시민은 이태원을 다시 찾지 못한 채 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방문객이 줄어든 적막한 이태원 거리에서 당장의 생계 걱정에 한숨을 내쉬는 이도 적지 않았다. 참사 후에도 일상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지만 미안함과 자책감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이태원동에서 오래 거주했던 직장인 김경은(29)씨는 “모두가 아직 이 참사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방식을 찾지 못해 회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이날 벌어진 일을 각자 적절한 방식으로 소화해야 하는데 그냥 묻어놓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최소임(33)씨는 “우리 사회의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본다”며 “그 이유는 자연스러운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지도 않고 책임자 처벌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태원 거리에서 만난 익명의 한 시민은 “충분히 슬퍼하되, 누군가의 자녀고 동생이고 친구였던 이들이 사랑한 거리가 다시 사랑의 거리로 회복할 수 있게 사회적 추모의 의미를 되새길 때”라며 “이태원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참사가 덮는다고 자연스럽게 없던 일로 흐려질 수 없고,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기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를 겪은 20대 젊은이들은 이태원 참사로 국가의 안전 시스템을 더 불신하게 됐다.

 

20대 초반부터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를 겪고 있다는 김채운(29)씨는 “‘나의 안위를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며 “국가나 사회 지도층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거라는 확신이 안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참사 후 ‘이태원에 놀러 간 게 원인’이라며 희생자에게 화살이 돌아갔을 때 내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게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며 “참사 유족이 바라는 바가 이뤄지고, 사회적으로 참사 결과가 납득되면 이태원에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태원 참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고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태원 방문객 수 유례없는 감소… “이태원에 갈 수 없어요”

 

사회초년생인 오유림(25)씨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이태원을 방문했지만, 참사 이후로는 이 공간을 찾은 적이 없다. 오씨는 “약속을 잡을 때는 즐겁게 놀려는 목적인데, 이태원역을 약속 장소로 제안하기가 어색해졌다”며 “그 사고가 일어난 장소를 방문하는 일 자체가 마음 아프고, 슬프다”고 말했다. 오씨는 “당시 뉴스에서 본 장면이 떠올라 내 자신이 감정적으로 예민해질 것 같아서 이태원 자체에 부정적인 생각은 없지만 이 장소를 피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이태원에서 승·하차하는 인원을 봐도 이태원 방문객 수 감소 폭은 유례없다. 5일 서울교통공사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2020년 4월 말∼5월 초 급감했던 이태원 방문객 수는 유행이 완화하며 최근 들어 코로나19 발생 전과 큰 차이 없는 회복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참사 발생 이후 코로나19 유행 당시보다 훨씬 급격한 추락세를 보였다. 통상 핼러윈 축제가 있는 10월 이태원역 승·하차 인원이 늘었다가 11월에 줄어드는 추이를 보이지만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10월 127만3939명에서 11월 103만9430명으로 약 18.4% 감소한 반면, 지난해에는 10월 105만3453명에서 11월 60만4873명으로 42.6% 폭락했다.

 

◆“예방할 수 있었던 비극… 너무 미안” “이런 끔찍한 일 다시 일어나선 안돼”

 

“끔찍하고 어이없는 일이 또 일어나면 우리 아이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참사 원인을 분석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대책을 단단히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추모객 김모씨)

 

5일 찾은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분향소는 참사 직후보다 확연히 한적해진 모습이었다. 참사 이후 100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추모객이 몰려 대기줄을 형성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2분에 1번꼴로 추모객이 방문해, 분향소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는 않았다. 이들은 국화꽃을 들고 영정사진을 살피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분향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 시민은 “하루 평균 300∼400명 정도 찾아온다”며 “오늘이 100일이라 조금 더 오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다른 자원봉사자도 “하루에 국화꽃 200송이를 주문하는데 매일 다 소진된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방문자가 줄어들긴 했지만, 주기적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3일에도 취재진이 현장을 찾았을 때 다섯 번째 분향소를 방문했다는 권은숙(46)씨는 “참사 당일 아침,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준비물을 사려고 참사 현장 근처에 왔었다”면서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녀를 키우는 입장이라서 더 마음이 아프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시민추모대회 거리행진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에 위치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 행렬이 유가족을 선두로 서울역 인근을 행진하고 있다. 이날 행진은 삼각지역 인근 대통령 집무실을 거쳐 광화문광장으로 향해 집회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유가족 측은 계획을 바꿔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집회를 열었다. 최상수 기자

죄책감이 들어 이태원에 오지 못하겠다는 시민들도 있지만, 죄책감 때문에 이태원에 오는 이들도 있다. 지난달 31일 분향소에서 만난 다이애나 로자스(37)는 “이태원 근처에 사는데, 분향소에 오지 않으면 죄책감이 심해져서 자주 들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3년이 됐다는 그는 “(이태원 참사는) 예방할 수 있었던 비극이다. (참사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이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발생해선 안 된다는 의견은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초등학생 딸의 손을 잡고 분향하던 김모(55)씨는 “이런 끔찍하고 어이없는 일이 또 일어나면 우리 아이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그러지 않으려면 참사의 원인을 분석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대책을 단단히 마련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사람들에게 잊히기만 기다리는 것 같은데,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정치인이 오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미(67)씨도 “이런 큰일이 벌어졌는데 아직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현장에서 고생한 사람들만 처벌받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속상하다”며 “책임자들이 자리에서 내려오고 처벌받을 때까지 시민들이 잊지 않고 유가족과 함께해줘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이 같은 시민들의 발길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지난 1일 분향소에서 만난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부대표는 “참사 이후 이태원에 시민들의 흔적이 잔뜩 쌓였다”며 “시민들이 붙인 쪽지를 보고 많은 사람이 이 아픔을 같이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씨의 딸은 결혼 준비를 하던 남자친구와 이태원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집에 가려다가 참사를 당했다.

 

이 부대표는 참사 생존자들을 향해 “혹시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여러분의 잘못이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여러분도 피해자고,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분들”이라며 “자신들의 삶을 꽃피우지 못하고 끝나버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면서, 최선을 다해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면서 살아가 달라. 여러분의 삶은 소중하다”고 당부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사회부 경찰팀=김선영·정지혜·박유빈·조희연·김나현·안경준·유경민·윤솔·윤준호·이규희·이민경·이예림·채명준·최우석·김계범·이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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