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물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정의연 등 ‘보라색 천’ 덮고 규탄
대치상황 지속… 결국 하루 연기
“더 이상 정당한 집행 방해 말라”
서울시가 4일 중구 남산 ‘기억의 터’에 있는 민중미술가 임옥상(73)씨의 조형물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 철거를 시도했으나,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집행을 하루 미뤘다. 앞서 시는 임씨가 강제추행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오는 6일까지 시립 시설에 있는 그의 작품들을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동률 서울시 대변인은 이날 오전 입장문을 내 “남산 기억의 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고, 기억하기 위한 추모의 공간”이라며 “의미 있는 공간에 성추행 선고를 받은 임씨의 작품을 그대로 남겨 두는 건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시민 정서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임씨의 작품을 철거해야 한다’고 답했다며 “철거만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른바 기억의 터 설립추진위원회(추진위)는 편향적인 여론몰이를 중단하고 시가 하루빨리 임씨의 작품을 철거할 수 있게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 대변인은 “기억의 터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성범죄 유죄 판결로) 공간의 의미를 변질시킨 임씨의 조형물만 철거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는 작가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국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대체 작품을 재설치할 방침이라고 부연했다. 이 대변인은 “추진위와 국민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고 발전시켜 기억의 터를 과거의 아픈 역사를 함께 치유하고 가슴 깊이 기억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시는 애초 이날을 철거 예정일로 공지하고 오전 이른 시각 철거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추진위와 정의연 등 관계자들이 오전 6시부터 기억의 터에 모여 규탄 행동에 나서면서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이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보라색 천으로 임씨의 작품 등을 둘러싸고 철거를 막았다. 단체 관계자들은 규탄 집회에서 “시가 임씨의 작품을 철거한다는 이유로 기억의 터 조형물을 일방적으로 철거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성추행 가해자의 작품을 철거한다는 명분으로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지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이 대변인은 오후에 다시 입장문을 내 “정의연 등을 비롯한 시민단체가 퍼포먼스 등을 명분으로 철거를 계속해서 방해하고 있다”며 “위안부를 기리고 기억하는 공간에 성 가해자의 작품을 절대 존치할 수는 없다”고 거듭 역설했다. 그는 정의연을 향해 “더 이상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지 말라”며 5일에는 반드시 철거하겠다고 했다.
임씨는 50여년간 다양한 사회비판적 회화·조각을 선보이며 1세대 민중미술가로 불렸다. 2017년엔 박근혜정부 말 서울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 모습을 담은 임씨의 그림 ‘광장에, 서’가 문재인정부 청와대 본관에 걸리기도 했다.
그는 2013년 8월 자신의 미술연구소에서 일하던 여성을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는 등 추행한 혐의로 지난 6월 기소됐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지난달 17일 임씨에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임씨의 작품은 기억의 터 외에 다른 시립 시설에 4점 더 전시됐었다. 이 중 3점은 철거가 완료됐고 1점도 6일까진 철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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