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여야 불문 식사 자리 가져
김동연, 정치인과 접점 확대 나서
홍준표, 한동훈 비판하며 尹 엄호
대선 문턱을 넘나들던 시·도지사들이 잇달아 정치 보폭을 넓히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작심한 듯 현직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옹호하고, 4·10 총선에 나섰던 당선자·낙선자들과 회동하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선 때마다 여권의 ‘잠룡’으로 거론돼온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정부의 ‘해외 직구(직접구매) 금지’ 정책 혼선 사태를 두고 여당 중진들과 각을 세우며 주목 받았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유승민 전 의원 등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공개 설전을 벌였다. 그는 “안전과 기업 보호는 직구 이용자들의 일부 불편을 감안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며 정부 입장을 두둔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4·10 총선 이후 지역과 여야를 가리지 않는 ‘식사 정치’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총선 9일 만인 지난달 19일 서울 동북권 국민의힘 낙선자 14명과의 만찬을 시작으로 서남권 낙선자, 서울·경기지역 당선자, 비례대표 당선자, 낙선한 측근들과 오찬·만찬을 함께했다. 지난달 30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서울지역 당선자 10여명과도 오찬을 가지면서 관심을 모았다.
서울시 주요 정책에 대한 설명이나 22대 국회 입법사항에 대한 요청, 당선·낙선자 격려와 위로 자리였다는 설명에도 정치권에선 오 시장이 총선 후 보폭을 넓히며 본격적으로 당내 입지 다지기와 외연 확장에 나선 것이란 시각이 많다.
외교·안보 행보도 눈길을 끈다. 오 시장은 이날 시청 집무실에서 미국의 대표적 국방·안보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제이슨 매서니 소장을 만나 한·미동맹 등 안보 현안을 논의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과 12월에 연달아 안보 관련 포럼을 연 바 있다.
지난 대선에 출마했다가 중도 사퇴한 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최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함께 ‘비명(비이재명)계’ 구심점으로 불리며 정치인들과 접점을 늘리고 있다. 이달 25일 서울에서 열린 야권의 첫 대규모 원외 집회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채 상병 특검법’ 거부를 강력히 규탄했다. 김 지사는 집회 직후 SNS에 ‘채 상병 특검 통과! 국민의 명령’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김 지사 역시 식사 정치에 적극적이다. 전날 옛 도지사 공관인 수원시 ‘도담소’에서 경기지역 22대 국회의원 당선자 60명 중 40명을 모아 만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엔 민주당 36명 외에 국민의힘 송석준·김성원·김은혜 당선자와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자도 참석했다.
그는 지난 23일에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에 참석, 친문(친문재인)·비명계 정치인들과 만났고, 22일엔 4·10 총선 격전지였던 부산을 찾아 민주당 낙선자 10여명과 식사하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김 지사의 발언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 23일 부산MBC 인터뷰에선 “(대통령이) 민생에는 눈 감고 민심에는 귀 닫은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고 일갈했고, 21일 SNS에선 채 상병 특검법 거부를 겨냥해 “방탄용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여권의 대선 후보 출신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인구 500만’ 대구·경북 통합론을 띄우며 지지 기반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총선 직후부터 줄곧 국민의힘 한동훈 전 위원장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윤 대통령 엄호에 나서고 있다.
홍 시장은 지난 16일 윤 대통령과 비공개로 만나 4시간가량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인선 등 국정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국민의힘 대구지역 당선자들과 오찬 회동을 열어 대구·경북 규합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각에선 홍 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차기 대권 후보와 통합 대구·경북의 첫 단체장 자리를 양분할 것이란 해석까지 제기한다. 홍 시장은 이를 의식한 듯 얼마 전 SNS에 “특정인을 연일 비판한 건 또다시 생길 수 있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를 막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여야 광역단체장들의 행보에 대해 정치권에선 “너무 나갔다”거나 “속 시원하다”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각 시·도 관계자들은 “(단체장들이) 총선 당선자들과 만난 건 지역균형발전과 개발사업 등에 대해 22대 국회의 입법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였고, 낙선자들과의 만남은 위로하는 자리였다”며 지나친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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