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만에 주중대사가 교체됨에 따라 얼어붙은 한·중관계에 해빙 분위기가 찾아올지 관심이 쏠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임 주중대사에 김대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내정했다. 김 내정자는 통계청장을 역임하고 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정책실장을 맡는 등 다양한 국정경험을 갖춘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비서실장으로 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김 내정자를 주중대사로 보내는 것은 양국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 표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관영 매체도 전문가를 인용해 관계개선 의지를 점치며 조심스러운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주중대사 내정자, 정책 경험 풍부”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1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주중대사 인선 내용을 발표했다. 정 실장은 “김 내정자는 오랜 기간 경제부처에서 근무하며 한·중자유무역협정(FTA)과 무역 갈등 해소 등 중국과 경제 협력 사업을 추진한 정책 경험이 풍부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한·중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중국의 사회·역사·문화에 천착했을 뿐 아니라 수준급의 중국어 구사력도 갖췄다”며 “양국 간 전략적협력동반자 관계를 지속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격변하는 동북아 질서에서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외교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김 내정자는 기획예산처 예산총괄심의관과 재정운용실장, 이명박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윤석열정부에서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뒤 올해 초 교체됐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신임 주중대사로 전임 대통령 비서실장을 내정한 것은 우리 외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함과 동시에 최근 활발히 가동되고 있는 한·중 고위급 교류의 흐름을 이어 양국관계를 더욱 성숙하게 발전시키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중량급 부임에 관계 복원 힘 실리나
주중대사에 대통령의 측근이 내정되며 한·중관계 복원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미·중 갈등과 북·러 밀착 속에서 한·중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해 대중 외교의 최전선에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중량급 인사를 배치한 것이라는 평가다.
내년 11월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1년 만에 방한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중 간 소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중국은 사드 배치 이후 갈등의 골이 깊어져 갔지만 그동안 끊겼던 고위급 교류가 최근 속속 재개되면서 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타고 있다.
지난 5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방중을 시작으로 한·중·일 정상회의, 한·중 외교안보대화, 한·중 외교전략 차관대화 등 고위급 소통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처럼 고위급 소통이 활발해지는 와중에도 서울과 베이징에 주재하는 양국 대사가 운신의 폭이 좁아 아쉽다는 지적도 있었다.
싱 전 대사가 지난 7월 이임한 데 이어 정재호 대사도 교체되면서 새로 부임하는 양국 대사는 더욱 활발하게 주재국과 소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면에서 중국이 석 달째 공석인 주한대사를 신속하게 임명할지도 주목된다.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이번 대사 내정을 긍정적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사는 국가와 국가 관계 발전의 다리”라며 “한국이 새로운 주중대사를 지명했고, 우리는 이에 관해 한국과 소통을 유지하면서 중·한(한·중) 관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유지하도록 추동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오 대변인은 ‘3개월여 동안 공석 상태인 주한 중국대사는 언제 임명되는가’라는 질문에는 “현재로서는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답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를 인용해 김 내정자의 주중대사 지명은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뤼차오(呂超)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김 내정자는 윤석열정부 의사결정 그룹의 핵심 멤버”라며 “그가 앞서 경제·무역 분야에서 중국과 맺은 실용적인 교류는 전임자보다 나은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호 대사, 마지막 국정감사 치러
김 내정자와 교체되는 정재호 주중대사는 지난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현지에서 진행한 국정감사를 치렀다. 국감에서는 지난 2년여 간 정 대사의 직무 수행과 논란 등에 관한 질의가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은 정 대사가 중국 거시경제 총괄 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나 통상 업무를 담당하는 상무부, 문화콘텐츠 교류를 담당하는 국가광파전시총국 등 부처 당국자나 한·중의원연맹 중국 측 대표 등 한국과 관련한 인사들을 만나지 않았다며 “대사로 3년 재직했는데 공식적 자리에서 중국 외교부 인사와 학자 몇명 만난 것 외에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 대사는 “코로나19가 끝나고 올해 상반기 세 부처에 면담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못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같은당 이재정 의원은 정 대사가 취임 직후인 2022년 8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을 만나 중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거론하며 ‘파티는 끝났다’고 언급한 일을 거론했다. 정 대사의 ‘파티’ 발언은 앞서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동행한 최상목 경제수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0년 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중국의 대안 시장이 필요하고 시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탈중국’을 공개 거론한 것과 맞물려 관심을 끌었다.
정 대사는 이 발언이 보도된 후 언론에 대해 민감한 태도를 유지했고, 한국 매체 주중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즉석 질문을 받지 않는 등 언론 접촉을 제한했다. 그는 이날 “아이가 놀이터에 갈 때 실컷 놀라고 하지 않고 조심해서 놀라고 하듯이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지정학적 요인을 감안하지 않고선 2년 전 당시 몰아닥치는 그것(지정학 리스크)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애정이 담긴 이야기였다”며 “그렇게 보도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정 대사는 올해 3월 자신의 갑질 의혹 관련 언론 보도 이후 주중대사관이 취재 제한을 시도한 일 등에 관한 지적에는 “갑질·막말·폭언은 없었고, 어떻게 제보로 언론에 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전체적 인화 책임에 있어서 유감 표명을 여러 번 했다”며 “전체적인 대사관 운영상 인화 문제에 있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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