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등 세계 곳곳 다니며 목격
5000개 넘는 광물종, 미생물 역할 커
바다 환경 플랑크톤 덕에 유지 가능
비커밍 어스/ 페리스 제이버/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2만2000원
아마존에는 매년 2400㎜의 비가 내린다. 일부 지역은 연간 강우량이 4270㎜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건 지리적 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존 열대우림은 매년 자신이 맞는 비의 절반을 스스로 만든다. 우림의 바닥에 있는 식물 뿌리와 균사의 공생 네트워크는 토양에서 물을 빨아들여 나무로 밀어 올린다. 물을 듬뿍 머금은 4000억그루의 나무는 매일 잉여 습기를 200억t씩 내놓는다. 이 습한 공기에 미세입자들이 응결핵으로 더해지면 구름이 커져 폭우가 된다. 응결핵을 구성하는 것들로는 온갖 식물이 분비한 염분과 화합물, 버섯이 날린 포자, 미생물, 유기물질 잔해물 등이 있다. 아마존 우림은 날씨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적극적 가담자인 셈이다.
흔해 생명체는 적절한 조건을 갖춘 지구에 출현해 환경 변화에 따라 진화해온 수동적 존재로 여긴다. 신간 ‘비커밍 어스’는 지구와 생물이 이런 일방통행식 관계가 아니라고 못 박는다. 미국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생물 역시 현재 지구 환경을 만들었음을 다양한 증거로 설명한다. 아마존이 좋은 예다. 생명체는 지구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환경을 변화시켜왔다. 지금의 지구는 생물들이 수십억년 동안 오케스트라처럼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만든 결과물이다.
지구를 하나의 살아 있는 실체로 보는 ‘가이아 가설’은 1960년대 영국 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개진하고 미국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발전시켰다. 과학계는 초반에 가이아 가설에 호의적이지 않았고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이후 점점 이를 받아들였다. 지구시스템과학자 팀 렌턴은 “이제는 생물의 진화와 지구의 진화를 연결된 것으로서 사고한다”며 “생명의 진화가 지구를 구성해왔고 지구 환경의 변화가 생명을 구성해왔으며 이 모두를 하나의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6년간 폐광의 실험실부터 아마존 우림에 솟은 325m의 관측탑, 시베리아 자연보호 구역, 아이슬란드 지열발전소까지 누비며 지구가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총체’임을 목격했다. 저자가 찾은 미국 샌퍼드 지하 연구시설에서는 지하 환경에 영향을 주는 미생물을 볼 수 있었다. 이 시설은 폐광된 금광을 개조한 곳으로 지하 1.6㎞ 깊이에 있다. 이곳의 벽면에서 떨어지는 물은 달걀 속껍질 같은 하얀 물질로 가득하다. 티오트릭스속에 속하는 미생물들이 세포 안에 황을 저장해 하얀 색조를 띄게 한 결과다.
20세기 중반 전까지 대부분 과학자는 1∼2m보다 깊은 지하에서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지하 1∼3㎞에서도 균류, 편충, 절지류, 미생물들이 발견됐다. 최근 과학계는 지하 미생물이 생물량(지구상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의 질량)의 10∼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지구가 가진 방대한 광물 다양성은 미생물 덕분이다. 현재 지구에는 적어도 5000개의 광물종이 있다. 초기 지구는 광물 다양성이 크지 않았지만, 미생물이 오랜 시간 지각을 갉아먹고 녹이고 다시 고체로 만들면서 흔하지 않은 원소들을 옮기고 집적했다. 생물이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달, 화성, 금성의 광물종은 다 합해도 최대 100∼200개밖에 안 된다.
학자들은 미생물이 지구상의 모든 곳에서 주변 지각을 변모시키고 있음을 발견했다. 미생물은 금, 은, 철, 구리, 납, 아연 등 지구의 금속 광맥을 형성하는 데도 기여했다. 미생물이 암석을 분해하면서 안에 든 금속을 풀어놓거나 미생물이 내놓는 화학물질이 금속과 결합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서다.
지각뿐 아니라 바다가 현재 모습이 된 것도 생명체 덕분이다. 플랑크톤의 공이 크다. 플랑크톤은 물에 떠다니는 다양한 유기체를 통칭한다. 식물성플랑크톤은 ‘바다의 원자’처럼 도처에 있다. 1980년대 해양학자들이 프로클로로코쿠스라는 시아노박테리아를 발견했는데, 바닷물 한 방울에 이것의 세포가 약 22만개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플랑크톤은 수십억년 동안 지구를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식물성플랑크톤은 바다에 양분을 공급하고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서 다른 어류들을 먹여 살린다. 탄소 순환에도 기여한다. 수면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면서 세포에 탄소를 저장하고, 바다 아래서 퇴적층이 돼 탄소를 가둔다. 과학자들은 식물성플랑크톤이 사라지면 대기의 이산화탄소가 두 배가 될 것이라 추정한다. 죽어서 분해된 플랑크톤은 하늘로 날아올라 구름의 응결핵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플랑크톤이 없었다면 대양은 그저 고요함만이 가득한 방대하고 외로운 물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외에도 토양, 해양식생, 미생물과 날씨의 관계 등을 통해 저자는 지구가 단지 생명현상의 배경이나 무대가 아니라 “생명이 곧 지구”라고 결론 내린다. 그렇기에 기후위기를 인류의 절멸이나 과학기술을 통한 위기 극복이라는 극단적 시각에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구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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