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정선의 중국 기행 ‘시간의 풍경을 찾아서’] 〈17〉 톈안먼광장 ‘찬란한 역사, 위대한 중국’ 부활 꿈꾸는 중화의 심장 입력 2012-09-05 21:47:44, 수정 2012-09-05 21:47:44 중국은 과연 인민의 나라인가? 중국 공산당은 인민을 위해 있는가?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은 중국을 찾을 때마다 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대학 시절 이영희씨의 ‘8억인과의 대화’를 감동적으로 읽었고, 중국이야말로 인민을 위해 존재하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베이징의 톈안먼광장을 수없이 찾아간 것은 베이징에 자주 간 탓이기도 했지만, 사회주의 중국을 상징하는 그곳에서 중국이 과연 어떤 나라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톈안먼광장에 대한 나의 관심은 먼저 이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톈안먼은 1420년 영락제가 처음 세울 때는 승천문(承天門)이었다. 그 후 1644년 이자성(李自成)이 이끈 농민군이 베이징을 공격할 때 소실된 것을 청나라가 1651년 다시 복구하여 세우면서 톈안먼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사회주의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광장’이라 부르지 않고, ‘톈안먼광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의외라 생각하면서도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그때 나는 중국이 ‘톈안먼’이란 이름을 그대로 계승한 데에는 개인에 대한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대신 중국 인민을 편안하게 만들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톈안먼광장을 처음 찾은 것은 1990년대 초였다. 미라로 누워 있는 마오쩌둥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내가 놀란 것은 길게 늘어서 있는, 마오쩌둥을 참배하기 위한 엄청난 길이의 행렬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놀란 것은 역사박물관 전시실의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며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는 전제군주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진시황·한무제·당태종 등 봉건왕조의 전제군주들을 추앙하고 있으리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민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다스리며, 주변 국가를 침략하고 위협하여 강대한 제국을 건설한 인물들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떠받들고 있는 현실은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이었다.
내가 40∼60회 분량에 달하는 긴 사극들을 열심히 본 데에는, 이러한 사극들이 일종의 ‘한류(漢流)’ 현상을 일으키며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이유도 작용했지만, 그보다는 베이징의 역사박물관에서 느꼈던 역설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크게 작용했다. 내가 본 중국의 사극들은 일단 재미있었다. 홍군과 공산당의 헌신적이고 영웅적인 투쟁을 그린 도식적 드라마에 비해 훨씬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천자린(陳家林)의 연출력과 탕궈창(唐國强)의 연기력이 결합하고, 무협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액션 장면과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 공존해 있었으며, 장대한 규모의 전투 장면을 박진감 있게 찍어 놓은 이 사극들은 확실히 과거의 공산당 드라마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정치적 메시지가 지나치게 분명한 홍군 드라마에 식상해 있던 중국의 시청자들, 한국의 홈드라마를 보며 일상적 인간들의 미묘한 갈등과 심리 변화에 환호하던 중국의 시청자들이 사극에 매달리는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중국의 사극은 오로지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만든 오락용은 아니었다. 사극 속에는 흥미를 넘어서는 일관된 메시지가 항상 숨어 있었다. 그 메시지는 장이머우(張藝謀)가 연출한, 2008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찬란한 역사, 위대한 중국’이란 바로 그 메시지였다. 내가 본 중국의 사극 속에서 봉건 전제군주와 그 측근들은 모두가 인민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며, 개혁에 대한 용기와 함께 결단력을 갖춘 인물이고,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시련을 감내하며 미래를 향해 불굴의 의지로 전진하는 영웅들로 그려지고 있었다. 예컨대 인간 도살자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잔혹했던 주원장은 왕조의 기틀을 닦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패한 공신들을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사려 깊은 인물로 그려지며, 가혹한 법률로 인민의 수족을 묶고 지식인을 탄압했던 위앙(衛?, 商?)은 수구공신에 맞서 인민에 대한 끝없는 사랑의 법률을 펼치면서 통일천하의 초석을 놓은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또 강희제·옹정제 등은 한족의 뛰어난 인물들을 만주족보다 훨씬 더 아끼고 사랑한 황제이며, 이들이 펼친 독재와 살인은 제거되거나 애국위민이라는 큰 명분 속에서 이루어진 가슴 아픈 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사극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찬란한 역사, 위대한 중국’을 위해 지도자들이 이렇게 자신을 희생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대진제국’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인민들의 외침을 들으면서 저 구호는 현재 중국의 지도자들이 인민을 향해 과거에 선조들이 가졌던, 제국 건설을 위한 애국의 자세를 현재적인 시점에서 요구하는 메시지로 읽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중국의 사극은 홍군 드라마가 한층 세련된 방식으로 바뀐 것이며, 역사박물관의 전제군주들은 중국공산당의 강력한 지도력을 중화제국의 건설이라는 정서적 공감대를 통해 지지해주는 일종의 장치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듯 최근 들어 중국의 속살을 접할수록 톈안먼광장을 생각하는 나의 머리는 날로 착잡해지고 있다. 베이징 정중앙에 위치한 남북 880m, 동서 500m, 총 면적 44만㎡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광장을 찾을 때마다 내 생각은 제국을 지향하며 착착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국의 이미지 때문에 착잡할 뿐만 아니라 두려움마저 동반한다.
그래서 나는 2012 런던올림픽 기간 동안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성적에 매달린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중국의 톈안먼광장을 두렵게 머리에 떠올린다. 일등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베이징올림픽 때 내걸었던 ‘찬란한 역사, 위대한 중국’이란 그 메시지를 떠올리고, 최근 허난(河南)성에 자유의 여신상을 능가하는 높이로 세워놓은 중국 성씨의 시조 황제 헌원(黃帝軒轅)상을 떠올리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무섭게 번지고 있는 중화민족주의를 떠올리고, 마르크스주의보다 인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중국공산당의 통치방식을 떠올리고, 광장을 가득 메운 홍위병들이 마오쩌둥을 향해 열광하는 광기에 찬 모습을 떠올린다. 최근 나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기 시작한 중국의 이런 이미지들은 톈안먼광장이 점차 위압적으로 커 보이는 느낌과도 무관하지 않다. 톈안먼광장을 처음 찾았을 때 나는 의도적으로 가까운 곳에 호텔을 정하고 오성홍기 게양식과 하기식을 보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광장을 찾았다. 1990년대 초의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인한 자본주의적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그리고 여행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사회주의 시절보다 폭넓게 보장되면서 활기에 차 있었다. 그래서인지 톈안먼광장에서 거행되는 게양식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많은 인파의 표정은 즐겁고 단순하고 소박했다.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온 촌스러운 사람들 앞에서 햇살은 밝게 대지를 비추기 시작했고, 오성홍기는 발전하는 중국처럼 하늘로 펄럭이며 솟아올랐다. 중국 사람들이 오성홍기 앞에서 취하는 경건한 태도에서 뭉클한 감동을 느낀 나는 그때 마음속으로 빌었다. 절대빈곤의 긴 터널을 이제 막 빠져나온 중국 인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위대한 문명을 지닌 중국이 세계 속에서 자존심을 회복하여 세계 속에서 너그럽고 당당한 국가가 되기를 기원했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은 그때와는 크게 달라졌다. 공산당도 달라졌고, 인민들도 달라졌다. 톈안먼의 역사박물관에서 보았던 봉건적 제국주의, 중화민족주의가 향수가 아니라 현실로 중국 속에서 부활하여 ‘찬란한 역사, 위대한 중국’이란 슬로건으로 나타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중국이 두렵다. 문학평론가 |